특히 이달 중순으로 예고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방비 증액 압박은 물론 돌발적인 추가 투자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관세 협상에 따른 국내 산업과 수출 위축 우려 역시 커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인 이행 로드맵을 담은 합의문을 도출하기 전까지 정부가 ‘디테일’ 협상 전략에 사활을 걸어야 한단 제언이 나온다. 국내 투자 여력 감소와 조선업 등의 인력유출에 따른 국내 산업 공동화 가능성에 대비해 정부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정부, 연일 성과 ‘홍보’…“3500억 달러는 보증 ‘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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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한미 관세협상의 성과를 연일 강조하는 중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우리 국익 면에서 받을 수 있는 맥시멈(최고치)을 설정했고 이재명 대통령이 이를 지키라고 마지막으로 설정한 범위 내에서 협상을 타결했다”며 “여간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스코틀랜드까지 따라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만남을 가지면서 협상타결의 ‘랜딩존’(착륙지점)을 봤다고도 했다. 김 실장은 “김 장관과 여 본부장이 가는 걸 두고 ‘너무 매달리는 인상을 주면 협상에 오히려 불리하다’며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격론이 있었다”면서도 “결과적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두 번의 면담을 통해 실질적인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실장은 협상타결의 핵심지렛대가 된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즉 1500억 달러 규모 조선협력 펀드와 2000억 달러의 대미투자 펀드의 향후 운용 방식에 관해선 각론을 내놓지 않았다. 그는 “사업을 기획하고, 발굴하고 제시할 의무는 미국에 있다. 우리가 무조건 돈을 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어떤 사업에 투자할지 모르는 상태로 이뤄지는 투자는 5% 미만으로 아주 비중이 작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500억 달러 규모는 ‘보증 한도’란 점을 분명히 했다.
‘투자 발생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기로 했다’는 미국 정부의 주장엔 “우리나라와 얘기할 때 9 대 1 얘기는 없었다”며 “자세히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구체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이익이 난 다음의 문제”라고 했다.
◇세부이행 로드맵 완성까지 ‘가시밭길’
전문가들은 이러한 펀드 운용방식과 수익배분 문제를 포함, 협상의 세밀한 부분을 채우는 ‘본게임’에서 정부가 미국 측의 추가 요구 압박에 놓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협상 문안 미완성 조항이 많아 미국은 문구 해석, 규정 변경, 부속 합의 등을 통해 한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조정할 여지가 있다”며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반도체의 경우도 미국 내 생산 확대 조건이나 수출규제 우회 방지 조항 등이 따라올 공산이 크다”고 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5월에 협상 타결한 영국은 아직도 세부이행 로드맵에 대한 문서화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실질적으로 국익에 가장 민감한 부분은 이행 로드맵 문서에 달려있어 우리 손해를 키우지 않는 방향으로 방어해야 한다”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달리, 안보와 통상을 하나로 묶는 ‘원스톱 쇼핑’ 방식의 협상 타결이 이뤄지지 않은 점은 우리 정부도 아쉬워하는 대목이다. 향후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정부는 한국에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까지 요구할 수 있단 관측이 있다. 올해 우리 국방비는 61조 2000억원으로 GDP 대비 2.3%로, 두 배 넘는 증액 청구서를 내밀 수 있단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통신기술 (ICT)업계의 주요 쟁점이었던 고정밀 지도 반출, 온라인플랫폼법, 망이용료 문제 등을 거론할 수 있단 전망도 있어 대응 논리를 강화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GDP의 20%가 넘는 3500억 달러 자금이 미국 내 공장, 기술개발과 인프라에 흘러간다면 국내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국내 산업 공동화가 벌어질 수 있단 분석도 있다. 상호관세 15%에 자동차 품목관세 15%·철강과 알루미늄 품목관세 50% 등이 확정됨에 따라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 정부가 지원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미국 투자를 압박했지만 당시엔 IRA법에 따라 보조금을 준다니 인센티브가 커서 기업들이 갔던 것인데, 이제는 인센도 받지 못하고 미국에 투자해야 할 처지”라며 “기업들이 구미에 세우려던 공장을 미국에 세우기로 한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대종 교수는 “자본 유출형 투자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내 고용, 기술 내재화, 중소기업 협력망 등에서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재정·세제정책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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