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끓여대는 폭염에 심신이 멍멍하다. 넋 놓고 있다가 어떤 소식이 닥치면 나간 넋을 불러야 할 정도다. 잠 깨라는 죽비를 맞듯 흐릿해진 정신줄을 퍼뜩 다잡는다. 멍하니 낮을 보내면 밤은 밤대로 불면과의 싸움에 녹초가 됐다. 그래도 폭염 폭우 퍼붓던 7월 보내니 어느새 건들팔월이다. 연중 제일 덥던 기억에 걱정이 앞서지만 설마 지난 7월보다 더하랴.
올 8월은 정신 다잡고 서야 할 큰 기억이 기다린다. 광복 80년을 맞는 해라 그에 따른 기념과 기림이 전보다 많은 것이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삶을 다 바친 이들의 헌신을 다시 보고 기리는 기억부터 준비하고 있다. 이 지역 문학에서는 그들의 뜨거운 헌신을 기리는 예로 각자 쓰기를 수행한다. 최선의 글쓰기 작업은 잘 기억하고 깊이 기려야 마땅한 ‘쓰는 사람’으로서의 실천이다.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의 희생에 힘입어 여기까지 왔는지, 거명 없어도 알겠지만 깊이 쓰기를 통해 기림의 예의를 더 갖추려는 것이다.
또 기억의 옷깃을 여밀 일은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원제 ‘진달내ᄭᅩᆺ’이었음) 출간 100년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현대시의 첫 문을 열어젖힌 시집으로 손꼽히는 진달래꽃은 당시 출간이 12월이라 기림의 여러 행사가 그즈음에 더 많이 나올 테다. 하지만 경기민예총 문학위원회에서는 봄마다 여는 문학콘서트에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 기념’ 특별코너를 마련하는 식으로 먼저 기렸다. 김소월 시라면 누구나 알고 많이 읊조렸을 법한 시 중에서도 진달래꽃, 개여울, 초혼, 산유화, 못 잊어 등을 준비해 참여한 도민들과 함께 낭송하며 즐긴 것이다. 100주년에 맞춰 다시 발행한 복각본 시집 ‘진달래꽃’도 두루 나누며 소월의 시혼에 깊이 숙였다.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말맛이나 가락맛이 잘 나타난다. 소월 시는 특히 전통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를 담은 언어가 많아 소리 내어 읽을수록 한국어 특유의 정한 어린 가락을 실어내는 맛이 아름답게 살아났다.
한 시인을, 나아가 100년이 되는 첫 시집 출간을 기억하는 일은 그렇게 흐뭇한 울림을 이루며 널리 번져갔다. 서로 마음 맞춰 읽으면서 시가 더 오롯해진다는 것을 더불어 느낀 각별한 기억의 호명이었다. 김소월을 배우고 시를 외며 즐겼던 학창시절까지 함께 돌아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촉촉해졌으니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치던 시의 힘이 새록새록 닿았다.
100년이란 기념비적 시간 앞에 또 짚이는 것은 동요 ‘오빠 생각’에 관한 기억이다. 1925년 ‘어린이’에 나온 오빠 생각은 수원 소녀의 작품이다. 그 소녀 최순애는 여동생 최영애와 서울의 잡지 어린이에 이름을 자주 올렸다. 어린 소녀들(당시 최순애는 열두 살, 최영애는 열 살)이 발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오빠 최신복의 덕이다. 관련 활동가 오빠가 자매의 글쓰기를 이끌어내며 국민동요 오빠 생각 탄생에 기여한 것이다. 이에 대한 기억과 기림은 지역에서 다양하게 준비 중이다.
기억에는 역사와 기록을 중시하는 예의가 담긴다. 기억의 자세가 참다운 기림의 예를 남긴다. 바른 기억이 기록의 변색을 막을 터, 기억과 기림의 자세부터 갖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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