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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우리 사회는 지금, 가족의 형태가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는 34%를 넘었고, 그 중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의 고령자다. 독신, 비혼, 자녀 없는 노후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닌 보편적 삶의 한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마지막은 여전히 준비되지 않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도 모르는 채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상속인이 없다면 재산은 국고로 귀속되고, 혼자 죽은 후에는 장례와 유품 정리가 어려워 지자체가 개입하는 예도 적지 않다.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은 이제 드물지 않다. 1인 가구가 다수가 된 시대는 이러한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시대에 주목할 수 있는 제도가 바로 ‘자기신탁(self-declared trust)’ 내지 ‘위탁자의 신탁선언’이다. 신탁법 전문가 오영표 변호사의 ‘가족신탁 이론과 실무’라는 책에는 자기신탁이란,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 수익자를 특정하고 자신을 수탁자로 정한 위탁자의 선언에 의해 설정되는 신탁이라고 써 있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위탁자와 수탁자가 동일한 사람이 되어 자신의 자산을 신탁 구조로 편성하고, 생전에는 자신이 그 자산을 운용하면서, 사후에는 제3자나 공익기관 등 특정 수익자에게 재산을 이전하도록 하는 신탁제도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유언대용신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지만 신탁법 제3조에서 위탁자와 수탁자가 동일한 경우를 허용하고 있어 법적 토대는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 신탁법에서 자기신탁의 설정 방법이 법정되어 있다. 자기신탁 설정이 채권자들이 강제집행할 것을 피하기 위하여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공정증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고, 위탁자는 신탁을 해지하지 할 수 없다. 즉 자기신탁은 공증사무실에서 변호사 앞에서 해야 하고, 철회불가능한 신탁이어야 한다.
신탁법 제36조에 의하여 위탁자와 수탁자가 같은데 수탁자가 신탁이익을 누리는 것을 무효로 볼 여지가 있다. 이러한 법적 제한으로 인하여 자기신탁은 아직까지 실무에서 드물다. 하지만 앞으로 1인 가구가 더 많아지고, 자식들의 효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에 자기신탁을 유용하게 할 수 있는 법적 개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자기신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1인 가구의 삶과 죽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제도가 될 수 있다. 첫째, 생전에 자신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고령자가 치매, 뇌졸중, 인지장애 등을 겪는 경우, 자산 관리가 어렵고 성년후견 제도를 이용하더라도 복잡하다. 이에 비해 자기신탁은 본인이 직접 수탁자가 되어 자산을 운용하고, 판단 능력이 약화될 경우를 대비해 예비 수탁자를 지정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관리권을 이전할 수 있다.
둘째, 자기신탁은 유언대용 기능을 수행한다. 자기신탁은 사망 즉시 신탁 규약에 따라 자산을 특정 수익자에게 자동으로 이전할 수 있어, 유언장을 따로 작성하거나 검인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상속인이 없거나, 복잡한 가족관계로 분쟁이 예상되는 경우 매우 유효한 방식이다.
셋째, 자기신탁은 기부문화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재산을 복지기관, 독거노인 지원 단체, 장학재단, 지방자치단체 등 공익목적으로 이전하도록 지정할 수 있다. 또한 장례 방식, 유품 처리, 반려동물 돌봄까지도 자기신탁 내에서 정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죽기 전에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자기신탁은 아직 거의 없다. 자기신탁에 대한 금융계나 법조계의 이해가 부족하다. 다행히도 최근 자기신탁선언을 최초로 공증을 한 변호사가 생겨났다. 이에 대한 신탁 구조나 세무 처리에 대한 경험이나 지침도 없어서 자기신탁은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법률문화가 될 것이다.
자기신탁을 공증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공시하여 다른 이해관계자들에게 알리느냐가 문제다. 자기신탁을 법원이나 지정 공공기관에 등록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자기 신탁이 유언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으므로, 공증을 할 때 설정 당시 위탁자의 의사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더욱더 자기신탁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법원이 제시하는 표준계약서와 신탁모델을 만들 수 있는 전문 변호사의 양성이 필요하다. 전문 변호사는 금융기관과 연계하여 신탁자의 의사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앞으로 늘어날 1인 가구가 자기 삶과 죽음을 스스로 준비할 수 있는 사회가 성숙한 공동체다. 자기신탁은 단순한 재산 이전의 기술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을 위한 자기결정권 실현의 법적 도구다. “누구에게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어떻게 남길 것인가”로 확장되어야 한다. 홀로 살아도 외롭지 않도록, 떠난 이후에도 뜻이 이어지도록, 자기신탁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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