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가 정태영 부회장의 리더십 아래 20년간 국내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흐름을 만들어온 '룰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 출시된 최초 VVIP 카드 'the Black'부터 최근 출시된 '현대카드 Summit'까지 현대카드의 혁신은 단순히 카드업계를 넘어 국내 프리미엄 시장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정태영 부회장은 2005년 대한민국 상위 0.05%를 타깃한 'the Black'을 선보이며 현대카드를 국내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다크호스로 만들었다. 이전 프리미엄 카드가 재력과 지위만을 기준으로 회원 가입이 이뤄지고 골드와 실버 일변도로 카드사 간 차이가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the Black'은 완전히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Invitation Only'라는 전례 없던 가입 조건으로 재력과 지위 외에도 사회적 영향력과 가치를 기준으로 회원을 초청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초청을 받지 못한다면 회원이 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the Black'은 VIP가 VVIP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혜택 또한 명사와의 조찬 모임, 프라이빗 공연 등 단순히 돈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접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프리미엄 카드의 룰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에서는 정태영 부회장의 SNS에 오징어게임에도 출연한 이정재 배우가 456번 카드를 발급받은 게시글이 올라와 화제가 된 바 있다.
'the Black'의 영향력은 단순히 카드업계에 한정되지 않았다. 'the Black'의 성공은 프리미엄에 대한 사회적 정의와 관련 산업의 인식도 변화시켰다. 'the Black'의 출시 이후 재력과 지위를 넘어 그에 걸맞은 라이프스타일이 VVIP의 기준이 되면서 VVIP 고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일어났다.
백화점 업계에서는 갤러리 프라이빗 초청과 파인다이닝 행사 등의 VVIP 문화 행사가 증가했으며 프라이빗 뱅킹 업계는 자산 관리 외에 교육, 문화, 여행 등 라이프스타일 컨설팅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현대카드는 2006년 'the Purple', 2008년 'the Red'를 연이어 출시하며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1차 확장에 나섰다. 이때 현대카드가 선보인 '페르소나 마케팅'은 지금도 현대카드 브랜딩의 핵심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기업 마케팅에도 큰 영향력을 끼쳤다.
각 카드별로 페르소나를 설정함으로써 해당 카드를 사용하는 고객의 정체성을 각인시키는 방식인데 'the Purple'은 보라색이 가지는 이미지를 차용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이나 기업 임원급들에게 발급하며 디자인이나 여행 등 자신의 취향을 위한 경험을 중시했다면 'the Red'는 새로운 소비 주도층으로 트렌드를 선도하는 3040 직장인을 '뉴 프리미엄'으로 정의하고 아트와 패션 등 창의적이고 에너제틱한 소비층을 공략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 현대카드는 2018년과 2021년 'the Green', 'the Pink'를 출시하며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2차 확장을 이끌었다. MZ세대를 타깃한 프리미엄 카드를 통해 프리미엄이 사회적 지위와 안정적 재력을 확보한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에 도전한 것이다.
여행 및 해외 사용에 특화된 'the Green', 프리미엄 쇼핑에 강점을 지닌 'the Pink'는 경험, 나를 위한 소비 등을 중시하는 등 기성세대와 다른 소비 패턴을 지닌 MZ세대의 요구와 변화를 명확하게 읽어낸 선구안이 돋보이는 시도였다.
'the Green', 'the Pink'는 비단 금융뿐만 아니라 유통 등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끼쳤다. 2020년대 이후 백화점의 2030 전용 VIP 멤버십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엔 '현대카드 Summit'을 출시하며 일상에 집중하는 새로운 프리미엄의 개념을 제시했다. 10대 시절 X세대로 불린 '엑스틴'을 타깃한 '현대카드 Summit'은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자녀를 위한 소비에도 적극적인 새로운 고객층을 위해 바우처, 라운지, 발렛파킹과 같은 기존의 프리미엄 혜택과 함께 교육, 의료 등 일상의 프리미엄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눈에 띄는', '화려함' 등 일상과 괴리됐던 프리미엄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변화를 현대카드가 발빠르게 캐치하며 다시 한번 시장에 새로운 자극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대카드의 성공으로 다른 카드사들이 우후죽순 프리미엄 카드 개편을 시도했지만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전문가들은 현대카드가 프리미엄 시장을 압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기반에 현대카드만의 브랜딩 역량과 정태영 부회장의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컬러 시리즈'를 예로 들어보자. 퍼플, 레드, 핑크, 그린 등 팝한 컬러를 프리미엄 카드 이름과 플레이트 디자인에 적용한 시도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이었다.
하지만 파격에만 그쳤다면 현대카드의 프리미엄 전략은 실패했을 것이다. 현대카드는 컬러별 페르소나를 설정해 아이덴티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상품 기획부터 광고, 패키지, 혜택 등에 일관된 브랜딩 전략을 구사했다. 회원들이 카드와 자신을 쉽게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다.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 플레이트에 메탈 소재를 도입한 디자인 역량, 현대카드 라이브러리·슈퍼콘서트·컬처프로젝트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 마케팅 자산 등도 이러한 브랜딩 전략을 뒷받침했다.
아멕스가 국내 진출한 지 40여 년이 지나서야 최초로 현대카드에서 '아멕스 센츄리온' 카드를 출시하기까지 현대카드는 국내 프리미엄 카드 시장의 역사의 중심에서 신용카드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현대카드 프리미엄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프리미엄의 역사가 됐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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