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킬 미 나우’ 이석준·최석진 “장애가 아닌 관계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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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킬 미 나우’ 이석준·최석진 “장애가 아닌 관계에 관한 이야기”

투데이신문 2025-08-02 08: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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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미나우>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왼쪽부터)최석진·이석준 배우 ©투데이신문
연극 <킬미나우> 포토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왼쪽부터)최석진·이석준 배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세라 기자】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 죽음이라면. 반대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 

연극 <킬 미 나우> 는 바로 이 무거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그를 돌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존엄한 죽음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킬 미 나우> 는 캐나다 극작가 브래드 프레이저(Brad Fraser)가 2013년 발표한 작품으로,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2019년까지 세 차례 무대에 오르며 예매 사이트 관객 평점 9.9를 기록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올해 네 번째 시즌을 맞은 <킬 미 나우> 는 배우 이석준·배수빈·최석진·김시유 등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이 깊은 몰입으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관객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공연이 열리는 충무아트센터 근처의 한 카페에서 아버지 ‘제이크’ 역을 맡은 이석준 배우와 아들 ‘조이’ 역을 맡은 최석진 배우를 만나 작품 준비 과정부터 그 안에 담긴 고민,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석준(왼쪽)·최석진(오른쪽) 배우가 투데이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석준(왼쪽)·최석진(오른쪽) 배우가 투데이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이석준 : 연극 <킬 미 나우> 에서 장애아들을 홀로 돌보는 아버지 ‘제이크’역을 맡은 배우 이석준이다. 

최석진 :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들 ‘조이’ 역을 맡은 배우 최석진이다. 

Q. 연극 <킬 미 나우> 는 2019년 삼연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작품인데, 함께하게 된 소감이 어떤가.

이석준 : <킬 미 나우> 는 초연부터 함께한 작품이라, 고향집에 돌아온 듯한 설렘과 함께 책임감도 느꼈다. 오랫동안 이 작품을 사랑해주신 관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도 있었던 것 같다. 초연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함께해 온 만큼, 이번 시즌 공연은 이전과는 또 다른 분위기로 다가왔다. 재연과 삼연 당시에는 이미 작품을 잘 알고 있는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에는 이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과 오랜 시간 애정을 보내주신 팬들이 고르게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 덕분에 공연의 에너지도 다르게 느껴졌고,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으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최석진 : <킬 미 나우> 가 연극계 내에서 워낙 유명한 작품이기에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장애를 가진 ‘조이’를 표현해내는 과정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예전에는 연기나 연습이 힘들어도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넘어져도 괜찮다. 힘들면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게 됐다. ‘조이’를 만나는 과정이 연기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깊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Q. <킬 미 나우> 를 준비하면서 가장 주안점을 두고 연기한 부분이 있다면.

최석진 : 처음 연습을 시작했을 때는 외형적인 표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손동작이나 몸짓 등 겉모습을 흉내 내며 ‘진짜’처럼 보이려 집중했고, 그게 곧 역할에 몰입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석준 배우님이 “이 작품은 누가 더 뇌성마비 환자처럼 연기하느냐를 겨루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주며 작품의 본질을 일깨워줬다. 단순히 외형을 재현하는 게 아닌, 인물의 감정과 관계 속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 후로 ‘조이’라는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며 연기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특히 이석준 배우님이 옆에서 세심하게 도와주며 말투나 표현의 뉘앙스를 조정해준 덕분에 점차 내가 가진 편견을 내려놓고 인물 자체에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석준 : 이 작품은 겉보기엔 장애를 다룬 사회적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가 말하고자 한 건 ‘장애’가 아니라 ‘관계’다. <킬 미 나우> 의 진짜 주제는 서로 다른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가는가에 있다. 모두가 각자의 보이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듯, 이 작품도 누군가를 돕거나 극복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완전한 존재들 사이의 거리감과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투데이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왼쪽부터) 이석준·최석진 배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는 (왼쪽부터) 이석준·최석진 배우 ©투데이신문

Q.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나 도전이라고 느꼈던 부분이 있다면.

이석준 : ‘제이크’를 표현하기 위해 조사를 많이 했다. 배우로서 단순히 아픈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닌,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만큼의 ‘표현 가능한 고통’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 실제 장애를 재현하기보다는 ‘내가 경험해본 고통’을 토대로 연기적으로 새롭게 구성하려고 했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연극이라는 예술 안에서 고통을 구조화한 셈이다. 관객들에게는 제이크의 고통이 익숙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감정과 신체의 수많은 연습과 조율을 거친 결과물이다. 

최석진 :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실제 장애를 가진 분이 연기할 때보다 내가 어떤 강점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실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연기한다면 더 진하게 와닿을 수밖에 없고, 배우로서 그 이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연습을 거듭하면서 고민한 것은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이 아니라 연극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배우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실제와 똑같이 재현하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 어떻게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됐다.

Q. 서로의 연기에 대해 평한다면.

최석진 : 이석준 배우님의 연기를 보며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담는 절제의 힘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까지 연기에 감정을 더하려는 욕심이 있었는데,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연기란 무엇인지 알게 됐다. 그 모습에서 남다른 연기의 깊이를 느꼈다.

이석준 : 이전부터 아내가 최석진 배우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기에,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배우였다. <킬 미 나우> 에서 함께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석진 배우가 출연한 공연이나 영상들을 일부러 찾아보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같이 합을 맞춰볼 때도 매일 먼저 와서 연습하고, 끊임없이 물어보고 질문하는 등 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연극의 본질에 집중하려는 그의 진심을 보며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 현장 사진 [사진제공=연극열전]
연극 <킬 미 나우> 공연 현장 사진 [사진제공=연극열전]

Q. <킬 미 나우> 는 캐나다 극작가 작품이지만, 국내 장애 가족들이 겪는 현실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장애 가족들과 소통하거나 새로운 시각, 깨달음의 경험 등이 있었는지. 

최석진 :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재활 훈련 센터를 방문하고, 실제 장애 당사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장애가 있는 가정은 더 힘들고 슬플 것이다’라는 식의 선입견이 있었다. 그래서 공연 초반, 고모가 조이에게 태블릿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소리치며 연기하자 몇몇 관객이 웃었고 그 순간 ‘혹시 희화화처럼 보인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후 실제로 장애인분들에게 기쁠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여쭤봤고, “저도 누가 100만 원짜리 태블릿을 주면 소리지를 것 같아요”라는 답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그들은 뭔가 다를 것이다’라고 막연히 가정했던 내 안의 편견을 깨달았다. 그 후로 더 자주 만나고 연락을 주고받으며, 나의 장애에 대한 시선과 이해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석준 :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장애’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장애를 직접 들여다보거나 일부러 묘사하려는 인위적인 시도는 하지 않으려 했다. <킬 미 나우> 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장애는 이 연극에서 중심 주제가 아니라, 인물들의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이 작품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모르게 장애를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는 선민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더 보편적이고 일상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Q. 존엄한 죽음을 택한 제이크와 이를 존중하는 조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석준 : 이들의 선택을 응원한다. 예전에는 꿈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좋은 작품을 해서 좋은 배우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라는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공연을 잘 마치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 조용히 잠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꼭 죽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공연이라는 순간이 전부이고, 그걸 무사히 끝내는 일이 가장 큰 바람이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삶의 통제를 잃은 이들이 겪는 고통에 조금은 공감하게 된 것 같다. 

최석진 : 공연을 본 지인들이 ‘제이크’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나 역시도 연습 초반에는 ‘조이’라는 인물이 왜 아빠의 안락사를 도우려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습이 거듭될수록 배우들 간의 관계가 쌓이면서 ‘제이크’와 ‘조이’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무대 위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니 이성적인 판단은 사라지고 “편하게 해주고 싶다”는 감정이 훨씬 더 본능적으로 튀어나왔다. 진짜 관계가 생기고 나니 그들의 선택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연극 <킬 미 나우> 공연 현장 사진 [사진제공=연극열전]
연극 <킬 미 나우> 공연 현장 사진 [사진제공=연극열전]

Q. <킬 미 나우> 는 ‘오열극’으로 손꼽히며, 극 후반부에서 관객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처럼 무대에서 관객의 반응이 피부로 느껴질 때 어떤 감정이 드는가.

이석준 :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엔 관객들이 마당놀이처럼 공연에 소리치거나 웃는 등 적극적으로 반응하곤 했는데 요즘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점점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킬 미 나우> 첫 공연 때 관객의 울음이 터지면서 무대 위 감정도 고조되는 경험을 하고 난 뒤 공연은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후 공연마다 관객들의 눈물과 반응이 자연스러워졌고, 심지어는 휴지를 몇 장 챙겨야 할지, 마스크 안에 어떻게 넣어야 콧물 소리가 안 날지 등 노하우가 공유될 정도였다. 많이 울 수 있다는 건 많이 웃을 수 있다는 뜻이다. 관객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이 공연이 가진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

최석진 : 관객의 반응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경우 오히려 이번 공연에서는 귀를 닫고 무대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관객의 울음이나 웃음이 실시간으로 들릴 때마다 감정이 흔들리며서 의도치 않게 연기 톤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공연에선 한 여성 관객이 의자가 넘어갈 정도로 울었는데 그 뒤에 웃긴 장면과 더 슬픈 장면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 당시 무대 위에서 순간적으로 ‘더 이어나가도 되나’ 싶을 정도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공연 중간에 던져주시는 관객들의 반응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지만, 아직 무대를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것 같다.

Q. 이 기사로 처음 <킬 미 나우> 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최석진 : 어느 순간부터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나 감정과 꼭 연결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다. 그러나 공연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만 ‘좋은 관람’이 되는 건 아니며, 그냥 보고 재미있으면 웃고, 슬프면 울고, 별로면 “내 취향은 아니구나”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공연은 무거운 목적의식을 갖고 봐야 할 작품이 아니라, 가볍게 보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흐르면 되는, 그런 작품이다.

이석준 : 공연을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나, 딱 하나만 볼 생각이 있으신 분들에게 <킬 미 나우> 는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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