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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을 검토해보면, 같은 문장이라도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이 정도도 못 합니까?”라는 질책이 1대1 면담에서 구체적인 개선 방향과 함께 전달되었다면 업무 지도 범위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수 직원이 지켜보는 회의에서 반복되었다면 모욕적 언사로 평가되어 괴롭힘으로 인정될 수 있다. 같은 단어라도 전달 방식, 맥락, 반복성에 따라 법적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급심 판결들을 살펴보면, 반복적 모욕이나 공개적 망신 주기, 특정 직원만을 겨냥한 조롱 등이 괴롭힘으로 인정된 경우가 많다. 반대로 실수의 원인과 개선 방향을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단호한 어조는 정당한 업무 지도로 본 사례가 적지 않다. 법은 내용뿐만 아니라 전달 과정에서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굴욕감’을 중시한다는 점이 확인된다.
관리자가 분쟁을 피하려면 몇 가지 실무 포인트를 명확히 챙겨야 한다. 우선 피드백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닌 업무 개선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업무 일지나 이메일에 “이 부분은 기준에 맞춰 수정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겨두는 것이다. 둘째로 전달 환경을 조율할 필요가 있다. 공개된 자리에서의 질책은 법적 판단에서 가장 불리한 요소다. 가능하면 1대1 면담이나 비공개 메신저를 활용해 전달하는 것이 좋다. 셋째로 표현을 가다듬어야 한다. “왜 이것도 못 하냐”는 식의 언급은 불필요한 평가가 섞여 있다. “이 부분은 기준에 맞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정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바꾸어도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된다.
기업 차원에서도 이런 실무 포인트를 관리자들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법 조항 교육으로는 실제 현장에서 적용하기 어렵다. 관리자가 자주 접하는 상황별 예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사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내부 교육에서 실제 대화 시뮬레이션을 해보게 하면 효과가 크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는 관리자의 권한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업무 지도의 이름 아래 방치되던 모욕적 언행을 걸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기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관리자를 보호하고 조직을 지키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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