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 숲길은 평화로워 보인다. 계곡 옆 나무 그늘에서 쉬고,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한낮 열기가 조금은 잊힌다. 그런데 숲속 어딘가, 아무도 모르게 ‘살인 곤충’이 둥지를 틀고 있다. 나무 구멍, 전봇대 속, 돌담 틈에 종잇장처럼 겹겹이 쌓은 둥지를 숨겨둔 이 곤충의 이름은 장수말벌이다.
보통의 벌과 달리 장수말벌은 사람을 향해 먼저 공격해 온다. 한 마리가 날아드는 게 아니라 수십 마리가 동시에 덮친다. 얼굴, 목, 정수리처럼 살이 약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쏘고, 한 번에 여러 번 침을 찌른다. 사람이 놀라 달아나면, 그 속도를 따라잡아 가며 더 집요하게 공격한다.
피부는 물집처럼 부풀고 열감이 올라온다. 벌에 쏘였을 뿐인데 열이 오르고 맥박이 빨라진다.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빠지기도 하며 심하면 의식을 잃는다.
장수말벌은 어떤 곤충인가… 벌 중의 포식자
장수말벌(Vespa mandarinia)은 말벌류 중 가장 크다. 성체 몸길이는 4~5cm, 날개를 펴면 7cm를 넘는다. 머리는 선명한 주황색, 복부는 검은색과 갈색 줄무늬가 선명하다. 다른 곤충과 달리 입 주변에 발달한 큰 턱이 있어 육식할 수 있다. 이 턱으로 꿀벌, 사마귀, 딱정벌레 같은 곤충을 씹어 애벌레에게 먹인다.
독침도 강력하다. 침 길이는 6mm 이상이며, 여러 번 찌를 수 있다. 꿀벌처럼 침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공격을 이어간다. 독 성분은 조직을 파괴하고 신경계에 영향을 준다. 특히 장수말벌 독은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와 신경독이 혼합된 형태로, 인체에 들어오면 통증뿐 아니라 알레르기 쇼크까지 유발할 수 있다.
독성, 크기, 집단 공격성까지 갖췄기 때문에 천적이 거의 없고 큰 새들도 장수말벌은 피한다. 한국에는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해발 100~800m 산림, 계곡, 야산뿐 아니라 도심 공원, 아파트 단지 조경수에서도 발견된다.
여름이 특히 위험한 이유… 장수말벌의 활동 패턴
장수말벌은 5월 중순부터 활동을 시작해 10월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8~9월은 특히 조심해야 하는 시기다. 이 시기엔 여왕벌이 낳은 일벌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해 집단을 형성하고, 둥지 크기도 최대치를 찍는다. 공격성도 이 시점에 가장 강해진다.
둥지는 처음엔 주먹만 한 크기였지만, 한여름이 지나면 사람 머리통보다 커진다. 나무 둥지 속, 폐가 벽 틈, 전기함, 우체통, 시멘트 담장 틈 같은 곳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발견이 어렵다. 외형은 종이처럼 보이는 층으로 둘러싸여 있고, 갈색 줄무늬가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떨어진 이물질처럼 보일 수 있어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건드리는 일이 잦다.
장수말벌은 둥지를 위협한다고 판단하면 반경 5m 이내 접근자에게 공격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는 페로몬 형태로 빠르게 전달된다. 1~2마리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둥지 전체가 동시에 반응하는 이유다. 심지어 소리, 진동, 향기에도 민감하다. 캠핑 시 텐트를 두드리거나, 향수나 모기 퇴치제를 뿌리는 행위가 자극 요소가 될 수 있다.
등산, 숲속 산책, 캠핑, 계곡 물놀이 등 야외 활동이 많은 계절에 말벌 피해자가 급증하는 배경이다. 농촌진흥청은 여름철 장수말벌 피해를 줄이기 위해 밝은색 복장 착용과 음식물 노출 최소화를 권장한다. 특히 향수, 헤어제품, 유칼립투스 오일 같은 강한 향을 피하고, 머리카락을 묶거나 모자를 착용해 신체 노출을 줄이는 것이 좋다.
장수말벌 쏘였을 때 대처법… 침 뽑지 말고 바로 찜질부터
장수말벌에 쏘였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즉시 대응이다. 먼저 환자를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킨다. 말벌은 추격 공격을 하기 때문에 떨어진 장소에서도 추가 공격 가능성이 있다.
침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만약 벌침이 피부에 남아 있다면 카드 등으로 긁어낸다. 핀셋처럼 잡아당기는 건 독주머니를 더 눌러 독을 퍼뜨릴 수 있어 피한다. 하지만 장수말벌은 대부분 침을 박지 않으므로,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냉찜질이다. 얼음을 천에 싸서 물린 부위에 올리고, 부기와 열을 낮춘다.
통증이 심할 경우 진통제 복용도 가능하다. 다만 알레르기 체질이거나, 벌에 과거 쇼크를 겪은 적이 있다면 바로 119에 신고해야 한다. 특히 호흡이 가빠지거나, 입술이 붓고, 맥박이 불규칙해질 경우엔 아나필락시스 쇼크 가능성이 높다. 시간이 생명이다.
말벌이 눈, 입, 목을 쏜 경우엔 바로 병원으로 이동한다. 눈 주위는 조직 손상과 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입이나 목 안을 쏘이면 기도가 막힐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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