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1일(이하 현지시간)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기존 25%에서 15%로 낮추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국을 비롯한 68개국에 대한 상호관세 협상안 행정명령은 8월7일부터 발효된다.
이에 따라 지난 2012년부터 발효된 '관세율 0%'의 한미 FTA는 사실상 종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한국은 FTA로 대미 수출품에 관세가 적용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최소 15%의 관세를 부담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협정을 계기로 한미간 우호관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한편, 한미 무역협정 타결 후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를 놓고 한미 양국이 연일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한미정상회담 전까지 논란이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미 상호관세 타결 행정명령 서명, 한미 FTA 시대 종료…최종건 "한미 우호관계 급변"
트럼프 대통령은 31일 한국 등 주요 교역국과 진행한 무역 협상 결과를 반영해 기존에 발표한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조정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86개국에 대한 이 행정명령 부속서에 명시된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보면 한국은 15%로 돼 있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조정된 관세율을 행정명령 서명부터 7일 이후 0시1분부터 적용한다고 명시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해서는 8월 7일부터 15%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한미 FTA(한미자유무역협정)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공식 협상이 시작돼 2007년 4월 타결됐다. 양국은 2007년 6월 한미 FTA 협정문에 서명했고, 2011년 10월과 11월 각각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 비준을 거쳐 2012년 3월 한미 FTA가 발효됐다. 한미 FTA체제에서는 '관세율 0%(제로)'였다.
한미FTA체결로 인해 양국의 주요 공산품 품목은 관세가 사라졌다. FTA 발효 후 한국의 무역 흑자가 늘어난 동시에 한국의 대미 투자도 2012년 70억 달러에서 2016년 180억 달러로 2.5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에 경제계에서는 한미 FTA가 모범 사례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제는 최소한 15%의 관세가 부과된다. 철강은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전문가들은 상호관세 부과는 단순히 관세 문제를 넘어 한미 관계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CBS라디오에서 "지난 20년간 한·미 관계를 구축해왔던 경제 관계(한·미 FTA)가 급변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거래적 관점에서 보다보니 그간 우호관계, 동맹간의 전통은 사실상 밀려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도 같은날 브리핑에서 "4월 1일 이후부터 각 나라에서 벌어지는 여러 협상을 보면 FTA나 WTO 체제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가 되고 있다"며 "체제 자체가 많이 바뀌고 있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한국 車관세 15% 주목…"日대비 가격우위 사라져"
中, 한미 '마스가' 경계…"세계 조선업 판도 바꿀 계획"
이번 한미 무역협정에 대해 일본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15%로 결정된 점에 주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기존에 2.5% 관세가 부과됐던 일본, EU 자동차와 달리 한국은 무관세로 자동차를 미국에 수출해 왔으나 이번 합의로 기존의 가격 우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한국 자동차 업계가)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자동차와 함께 한국의 중요한 대미 수출품인 반도체에 대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어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산케이신문은 이재명 정부가 일본, EU와 같은 관세율을 적용받으면서 초반 최대 난국을 타개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한미 동맹 강화를 외교·안전보장의 핵심으로 여기는 이재명 정부에 대미 협상 실패는 허용되지 않았다"며 "한국과 미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어서 한국이 양보할 수 있는 분야가 한정돼 있었다"고 해설했다.
중국은 한미가 조선업 분야 협력에 나서는 것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일 이번 무역협정 이면엔 세계 조선업 판도를 바꿀 계획이 숨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조선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한국이 제안한 '마스가'(MASGA) 프로젝트를 활용해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SCMP는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이중 미국 조선 산업의 재건을 지원하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1천500억달러를 쓰기로 약속했다"면서 한미 양국의 이런 합의는 미국 조선 산업을 되살리고 중국의 조선 분야 지배력을 견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조선산업은 미국 조선 산업을 부활시키고 중국 지배력을 억제하려는 워싱턴의 야망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문가 "농산물 추가 개방 없는 것 성과" "美 법원 결정이 변수"
전문가들은 이번 무역협정이 최선의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31일 YTN라디오에서 "상대적으로 협상 기간이 짧았고 막판까지 몰리는 상황에서 적어도 일본, EU와 같은 수준은 받아야 된다라고 논의를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부분을 얻었다"며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이 없는 상황에서 15%를 받았다는 점에서 가장 최선의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재 미 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해 법적 검토를 하고 있는 만큼 법원의 결정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혜민 전 한미 FTA 기획단장은 1일 CBS라디오에서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는 미국 헌법 위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단장은 "미국 헌법상 통상 협상은 의회 권한인데 통상 행정부에 위임을 해서 협상을 한다"면서 "그런데 미국 의회가 트럼프 행정부에게 협상 권한을 위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의회로부터 위임을 받아야 될 사항은 아니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국제 통상 법원에서 헌법 위반이라고 1차 판단을 내렸고 항소심이 진행 중인 만큼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백악관 "韓, 역사적인 쌀 시장 개방" 대통령실 "추가개방 없어, 美 오해인듯"
구윤철 "전쟁같은 협상…쌀 추가개방, 전혀 논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한미 양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을 놓고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한미 무역협정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에 완전히 개방하기로 하고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 등 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겠다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즉각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미국의 강한 개방 요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식량 안보와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소고기 월령제한 해제 문제나 쌀 수입 등과 관련해서는 양측의 고성도 오간 것으로 안다"며 "그럼에도 우리가 방어를 계속하면서 이 분야의 추가적인 양보가 없었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백악관은 한국과의 무역 협상 타결 사실을 알리면서 한국이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고 다시 언급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대한민국 대표단이 어제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협상을 체결했다"면서 "한국은 15%의 관세를 내게 될 것이며, 자동차와 쌀 같은 미국산 제품에 대한 역사적 개방을 할 것(providing historic market access to American goods like autos and rice)"이라고 밝혔다.
백악관 발표는 앞서 한국과의 관세 협상 결과를 발표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통령실은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해 "개방 폭이 더 늘어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미 농축산물 시장의 99.7%가 개방돼 있고 나머지 0.3%에 대해 더 개방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 우리 측 의견으로, 이 의견이 맞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강 대변인은 "상세 품목에서 검수나 검역 과정을 더 쉽게 한다거나 하는 변화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전체 (개방하는) 양에 있어서는 (추가되는 것이 없다)"며 "오히려 미국 측에서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검역을 완화하는 방식으로라도 개방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상세 항목은 조율과 협상 여지가 남아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쌀이나 농축산물에 대해 개방 폭은 넓히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세부 요건에 있어서 (한미가) 서로 인지하는 게 달랐다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다"고 부연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1일 귀국길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국 측이 한국 쌀 시장의 추가개방을 거론한 데 대해 "전혀 논의한 사실이 없다"고 일축했다.
구 부총리는 '백악관 대변인이 한국 쌀시장 개방을 언급했는데 어떤 이야기가 오갔느냐'는 질문에 "쌀과 관련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며 "미국에서 발표한 사항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농식품장관 "쌀·소고기 추가개방 없다…정부 발표 그대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쌀과 소고기에 대해서는 추가 개방은 없다"고 말했다.
송 장관은 이날 여야 의원들의 질의에 "(전날) 대통령실과 현지에서 우리 협상단이 발표한 내용 그대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SNS를 통해 공개한 내용에는 '완벽한 무역' 이런 표현이 있는데 정치적인 수사라고 저희는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시다시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우리 농산물 시장은 99.7%가 개방돼 있고 이것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라며 "쌀의 경우도 저율 관세로 미국 쌀을 매년 13만2천t(톤) 저희가 들여온다. 이미 개방이 돼 있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은 이번 한미 협상에서 언급된 검역 절차 협의에 대해서는 "개선이라는 표현은 소통을 강화한다는 것이고 8단계 검역 절차의 과학적인 역량 제고를 강조한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한미간 SPS(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 위원회도 있고, 저희는 늘 (미국 측과) 의견을 주고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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