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인터뷰 전성시대. 한 유튜브 채널이 캠퍼스로 향하자 이를 알아본 학생들이 카메라 앞에 등장한다. 수줍은 기색 없이 자신을 소개하는가 하면 노래 부르고 포즈 취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어쩐지 끼가 남다른 학생들로 가득한 이 학교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다. 문화예술 분야 인재가 모인 예술대학답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디마(DIMA)’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는 동아방송예술대학교는 배우, 뮤지션, 코미디언 등 연예인 졸업생들로 잘 알려졌지만, 실은 콘텐츠 촬영 현장이야말로 ‘디마 출신’으로 가득하다. 방송국과 제작사에 포진한 실무진 다수가 디마를 거쳤으니 말이다.
볕이 눈부신 날, 동아방송예술대학교를 이끄는 최용혁 이사장을 만나기 위해 경기도 안성을 찾았다. 번화한 도심과 떨어진 캠퍼스에는 일반 학교 건물 외에 대규모 촬영소인 DIMA 종합촬영소가 있다. 캠퍼스를 방문한 날에도 넷플릭스 시리즈 촬영이 한창이었다. 할리우드의 축소판이 이런 모습일까. 배우와 촬영진이 자유로이 다니고 학생들이 실습실을 오가는 작은 타운은 한산한 여름방학임에도 창작의 기운이 넘실댔다. 스튜디오와 장비실, 합주실, 공연장, 종합촬영소, 중계차 등 주요 공간을 부지런히 둘러본 뒤 최용혁 이사장과 마주 앉았다.
1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DIMA 종합촬영소. 2 UHD 스튜디오의 촬영 카메라. 3 HDTV 스튜디오에서 실습 중인 학생들.
가벼운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2023년 새만금 잼버리 대회 참가자들을 초청해 학교에서 파티를 열었다고 들었다. 그때 직접 디제잉을 했다고. 3년 전쯤 디제잉을 조금 배웠다. 한자리에서 많은 사람과 흥겹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머리와 손이 빨라야 하고 센스도 필요한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당시 잼버리 때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방문했지만 전국 각지로 흩어지지 않았나. 안성에 온 참가자들에게 기억에 남을 행사를 열고 싶어 파티를 기획했다. 종합촬영소 스튜디오에 세트를 마련한 뒤 조명을 화려하게 꾸미고 음료도 준비했다. 마침 배우고 있던 디제잉도 시도했고. 장소의 제약이 큰 취미라 지금은 멀어졌다.
현재 몰두하는 취미는 무엇인가? 최근에는 복싱 훈련에 집중한다. 제대로 훈련한 지 2년 정도인데 격렬한 유산소 운동인 데다 폭발적인 움직임과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점이 성격과 잘 맞다.
국제협력처장부터 기획실장, 총장, 그리고 현재 이사장직을 역임하며 긴 시간 방송예술 산업을 지켜봐왔다. 변화가 빠른 분야인데, 그간 어떤 움직임을 목격했나? 크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 번째는 K-컬처의 폭발이다. 2012년경부터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BTS, 블랙핑크, 이후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등을 필두로 한국 콘텐츠가 세계를 휩쓸지 않았나. 한국 가수가 빌보드를 장악하고 한국 영화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활약하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초기만 하더라도 한류는 작은 문화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국가적 산업 자산으로 격상했다. 두 번째는 기술의 발전이다. 4K, 8K 화질부터 VR, AR, XR, AI까지 신기술이 영상 제작 방식을 재정의하고 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영상 하나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였다면, 지금은 AI 활용 능력과 실감형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 등 새로운 창의성, 그와 관련된 윤리의식이 요구된다. 그 모두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교육 체계가 학교에도 필요했다. 그래서 동아방송예술대학교는 이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예컨대 영상제작사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해보면 AI 툴을 활용하지 못하는 구직자는 고용할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기도 한다. 본교 학생들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해 콘티를 만들고 촬영, 제작, 음향, 더빙 등 전 과정을 제작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여기에는 AI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실감형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VR, AR, 3D 애니메이션, 유니티 등 실습 공간을 구축했고, 디지털 트윈 기반의 XR 스튜디오를 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앞으로도 최첨단 기술을 학생들에게 소개해 인터랙티브 실감형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게끔 확대할 예정이다.
1 버추얼 스튜디오의 부조정실. 2 학생들은 모든 기기 장비를 직접 작동할 수 있다. 3 촬영, 조명, 음향 등 실습 수업 장비를 대여하는 창의실습지원팀.
대형 종합촬영소가 캠퍼스에 있다. 실제로 보니 규모가 굉장한데. DIMA 종합촬영소는 2009년 개관한 이후 140여 편의 영화, 드라마 및 콘텐츠가 촬영된 곳이다. 대표 작품으로 영화 <기생충>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 1, 2가 있고, 최근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더 홀>이 이곳에서 촬영을 마쳤다. 건물에는 100평, 300평, 600평 규모 영화 스튜디오와 촬영팀이 묵을 숙소, 영화과 교수진의 연구실과 강의실, 한국 영화 녹음 분야의 개척자인 故 이경순 선생의 음향 장비를 전시한 이경순소리박물관이 모여 있다. DIMA 종합촬영소는 비즈니스 모델이지만 영화 현장을 캠퍼스로 끌어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외부 전문가가 작업하러 와서 학생들에게 특강도 하고, 학생들이 현장에 엑스트라나 스태프로 투입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다.
DIMA TV라는 자체 방송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학생들이 어떻게 참여하는지 제작과 송출 과정이 궁금하다. DIMA TV는 2017년 개국한 공중파 유료 방송사다. 실전 교육이 가능한 국내 유일무이한 교육 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대학교가 방송사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방영하는 교육 모델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한 학기 동안 제작 수업에서 만든 콘텐츠와 여러 학과가 모인 융합 수업의 콘텐츠를 편성하여 방영한다. 또 본교 졸업생이 창업한 제작사가 콘텐츠를 납품하기도 하고, 방송국 자체적으로 교수나 학생, 크리에이터를 섭외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개발한다. 중요한 점은 공중파 방송이기 때문에 모든 콘텐츠가 심의 기준에 부합해야 방영될 수 있다. 방송 전문가인 교수들의 수업을 거쳐 완성된 콘텐츠만 방영되는 것이다. 또한 DIMA TV에 근무하는 제작진이 편성, 기획, 송출 전 과정을 담당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개인 크리에이터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자체 방송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물론 유튜브 1인 미디어가 대세인 것은 사실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유튜브만큼 수익성이 큰 사업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학교는 교육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DIMA TV는 우리 대학이 지향하는 실전형 교육의 완전체 시스템이다. 학생들은 실제 방송국에서 시행하는 기획, 제작, 촬영, 편집, 음향, 송출, 그리고 피드백까지 전 과정을 이곳에서 미리 경험한다. 유튜브나 1인 미디어는 편성 기획이나 송출, 조정실 시스템 등 방송의 핵심 인프라 교육 과정이 필요하지 않고 배울 수도 없다. 1인 미디어와 달리 이곳은 집단 창작이 이뤄지는 훈련소다. 융합 수업을 통해 다른 전공학과 학생들이 모여 협업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소통 능력과 실전 협업 능력 또한 대폭 향상된다. 어떻게든 콘텐츠를 완성해 방영해야 하니까. DIMA TV를 거친 학생들은 다양한 포트폴리오와 실무 경험을 안고 입사한다.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1인 미디어를 시작하더라도 협업 경험을 통해 더 깊이 있는 콘텐츠 창작자가 되리라 본다. 그렇기에 DIMA TV는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교육 플랫폼이자 시스템이다.
1 밴드 악기로 구성된 실용음악과 합주실. 2 DIMA 종합촬영소 제2스튜디오. 747.96m² 규모의 중형 스테이지다. 3 종합촬영소 건물 외관. 4 제2스튜디오 입구.
최근 DIMA TV에는 어떤 콘텐츠가 유행하나?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콘텐츠와 이성 관계를 다룬 예능이 대세인 것 같다. 예전에는 고상한 교양 프로그램도 많이 추진했는데 별로 재미를 못 봤나 보다(웃음). 요즘은 젊은 층의 관심을 끌 만한 가볍고 재미난 콘텐츠를 많이 기획하더라.
학생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여러 학과가 협업하는 융합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나? 융합 수업은 DIMA의 전통 있는 수업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방송 예술 콘텐츠 기반의 학과가 모인 만큼 학생들이 전공을 뛰어넘어 함께 프로젝트를 하거나 교수진의 협력 수업과 공동 연구가 자연스럽다. 대표적인 융합 수업으로 ‘화요 콘서트’가 있다. 실용음악과와 방송기술과, 영상제작과 등이 모여 DIMA TV에 방영될 콘서트 형태의 콘텐츠 시리즈를 만드는 수업이다. 여러 학과가 모이는 만큼 처음에는 잡음이 나기도 했지만 이제는 뿌리를 잘 내려 매끄럽게 진행된다. 학생들이 아주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다.
동아방송예술대학교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고. 학교 소유 유휴 부지 가운데 약 22만 평을 개발할 예정이다. 창작자의 무대이자 교육과 창작이 공존하는 K-컬처 복합문화지구 조성을 구상하고 있다. 창작자들이 협업하며 실험하고 대중과 만나는 공간이 탄생하길 바란다. 동시에 시너지를 일으켜 학교의 외연이 확장되고 학교가 위치한 문화 도시 안성의 정체성과 경쟁력이 강화되는 기폭제로 작용하길 희망한다. 나아가 경기도가 콘텐츠 산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궁극적으로 한국의 문화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보람이 클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준비하는 단계다.
사람과 콘텐츠 산업을 연결하는 전문 교육 기관으로서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방송국과 제작사가 밀집한 서울 상암동에 가면 수많은 DIMA 졸업생을 만날 수 있다. 이렇듯 본교가 업계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인재를 배출하는 학교로 머무르기보다 사람과 산업, 시대정신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학생들이 단순히 방송 기술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창의성, 다양성, 윤리의식 등 현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함께 고민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열린 창작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 그것이 동아방송예술대학교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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