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부터 시작된 사학분규의 대표적 사례인 상지학원 사태는 그간 분쟁 과정에서 사립학교법 해석과 적용에 관한 다양한 쟁점을 제기해왔다.
상지학원 등을 대리해 파기환송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김호철(사법연수원 20기)·박시환(12기)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단 비리 또는 학내 분쟁으로 이사가 해임되고 임시이사 체제로 학교를 운영하다가 정식이사를 선임해 학교를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법령상의 절차를 다소 위반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종전 재단이나 종전 이사들의 참여권을 어느 정도 인정해준 경우에는 절차 위반 그 자체만으로 정식이사 선임처분을 바로 취소할 것은 아니라는 의미”라며 “종전 재단이나 종전 이사의 참여권을 어디까지 인정해 줄 것인가를 제반 사정을 참작해 실질적으로 판단하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즉, 비리 재단이나 분쟁 학교의 종전 이사들 관여권을 적절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판시한 의미 있는 판결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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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지난달 18일 상지학원 전직 정식이사들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이사선임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 일부를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일부 이사의 사망 등 사유로 인해 해당 학교법인의 생존한 종전이사만으로 전·현직이사협의체의 총인원수인 ‘해당 학교법인 이사정수의 과반수’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조정위원회는 생존해 있는 종전이사들만으로 전·현직이사협의체를 구성해 그로부터 후보자 추천에 관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상지학원의 전직 정식이사인 김문기, 김옥희, 조규문, 김준기 씨가 2018년 8월 교육부 장관이 한 상지학원 정식이사 선임처분의 취소를 구한 소송이다.
원고들은 1990년 6월 4년 임기의 상지학원 정식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교육부는 1993년 6월 4일 ‘실태조사에 따른 시정지시를 상지학원이 이행하지 않아 극심한 학내 소요사태가 계속되어 행정이 마비되고 재학생 전원이 유급될 위기에 처하는 등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이사취임승인을 취소했다.
이후 상지학원에는 임시이사가 선임돼 10년 이상 관리체제가 지속됐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2018년 7월 상지학원 정식이사 선임을 심의하면서 생존한 전직이사가 이사정수 9명의 과반수인 5명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전·현직이사협의체 구성을 생략했다.
1심은 원고 패소 판결했지만 2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로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생존한 전직이사 인원이 해당 학교법인 이사정수의 과반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전·현직이사협의체를 구성해야 함을 전제로, 협의체 구성을 생략한 채 이뤄진 정식이사 선임처분은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해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2심의 기본적 판단은 옳다고 봤지만, 절차 위반이 실질적 지장을 초래했는지에 대한 심리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구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9조의6 제4항, 제5항은 조정위원회가 정식이사 선임을 심의할 때 전·현직이사협의체 등 여러 주체로부터 후보자 추천의견을 ‘청취하여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다.
대법원은 “구 사립학교법 시행령 제9조의6 제4항 제1호의 ‘협의체 총인원수를 해당 학교법인 이사정수의 과반수로 한다’는 규정은 구성원 수의 상한을 정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생존한 전직이사가 과반수에 달해야만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봤다.
대법원은 이 같은 해석의 근거로 △교육의 공공성 목표 하에 사립학교 운영의 투명성과 합리성 실현 △학교법인 설립목적을 승계한 전직이사 측 의견제출권 보장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의 자유 실질적 구현 등을 제시했다.
대법원은 전직이사들이 ‘학교법인의 설립목적을 승계한 존재’로서 정식이사 선임 과정에서 의견을 제출할 권리가 있다고 봤다. 사립학교 설립 및 운영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원래 설립 취지를 아는 전직이사들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다만 원고들이 모두 ‘물의인원’에 해당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의인원은 해당 학교법인이 설치·경영하는 학교의 운영에 중대한 장애를 야기한 것으로 평가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물의인원의 경우 과반수 미만의 후보자만 추천할 수 있어 협의체를 구성하지 않고 ‘기타 이해관계인’으로 분류해 의견을 청취한 것과 실질적 차이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은 이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 심리하지 않고 바로 절차적 정당성 상실로 처분 취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 원고 김문기·김옥희 씨는 소송 중 사망해 해당 부분 소송은 종료됐다. 대법원은 전직 정식이사 지위가 일신전속적이어서 상속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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