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30세대 사이에서 과거 유행했던 제품이나 트렌드에 열광하는 이른바 '복고' 열풍 불고 있는 가운데 그 중 일부는 외형은 비슷하지만 속에 담긴 의미는 전혀 다른 것으로 분석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로지 외모만 따지는 이른바 '외모지상주의' 트렌드도 그 중 하나다. 과거 90년대엔 지금의 클럽과 비슷한 개념인 '락카페' 등에서 오로지 외모만 따져 출입 여부를 정하는 이른바 '물관리' '수질관리' 등의 행위가 빈번했는데 최근 이와 비슷한 개념의 파티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조건 안 보고 외모만 보는 연애'를 콘셉트로 한 이른바 '외모승인제' 파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다만 얼핏 봤을 땐 '물관리'와 '외모승인제' 모두 오로지 외모만을 따진다는 점에서 서로 엇비슷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숨은 의미는 서로 다른 것으로 분석됐다. 과거의 '외모지상주의'는 조건 대신 사람을 우선적으로 보겠다는 심리가 발현된 것이라면 최근의 그것은 진지한 만남 자체를 거부하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에 일각에선 요즘의 '외모지상주의' 선호 현상은 저성장 시기의 안타까운 단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5년 '외모승인제 파티'로 돌아온 90년대 '락카페 물관리' 문화…등장 배경은 '극과 극'
최근 유행하고 있는 '외모승인제' 파티는 주로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홍보한다. 신청자는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 인적사항뿐 아니라 얼굴 사진과 전신 사진, 외모를 확인할 수 있는 SNS 계정 등을 공개해야 한다. 직업이나 수입 등은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 오로지 뛰어난 외모만이 참가 조건인 셈이다. 참가비는 평균 5만원 안팎이다. 철저히 외모를 따지는데도 수요는 상당하다. 일부 인기 파티는 한 달 치 예약이 조기 마감될 만큼 인기가 많다. 한 파티의 경우 여성 신청자 경쟁률이 무려 3대 1에 달했다.
이성을 만날 때 오로지 외모만 따지는 문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1990년대 초 이성을 만나는 장소로 한창 인기를 끌었던 '락카페'에선 외모를 보고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이른바 '물관리'가 빈번했다. 비슷한 장면은 수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도 등장했다. 당시 드라마에선 극중 '해태'(배우 손호준)와 '삼천포'(배우 김성균)가 락카페에 입장하려다 테이블이 없다는 소리에 몇 번이고 발걸음을 돌린다. 나중에야 테이블이 없다는 말의 의미가 외모가 딸려서 입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분노하게 된다. 그 시절에도 외모를 '입장권'으로 여기는 문화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부 최인주(55·여) 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만 외모를 따지는 줄 알지만 우리 때도 소개팅이나 락카페에 놀러갈 때는 미용실 가서 머리를 세팅하고 옷도 가장 예쁜 옷으로 입고 나갔다"며 "외모가 연애의 가장 큰 요소라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성용(52·남) 씨는 "예전에 압구정동에 가면 락카페가 참 많았는데 거의 모든 곳에서 '물관리'를 했다"며 "요즘 외모를 보고 참가 여부를 결정하는 파티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새삼 예전 젊었을 때 생각이 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수의 전문가들은 최근 인기를 끄는 '외모승인제 파티'와 90년대 '락카페 물관리' 문화는 겉으론 비슷해보일지 몰라도 등장 배경과 개인의 인식은 완전히 딴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90년대의 연애 문화는 고도의 성장 속에서 결혼까지 생각하더라도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비슷하니 외모를 기준으로 선택하자는 분위기 속에서 형성됐다면 지금의 연애 문화는 저성장 기조 속에서 결혼을 포기하고 단지 지금의 즐거움을 찾는 경향이 짙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 이전의 90년대는 대한민국이 전례 없는 경제 호황을 누리던 시기로 사회 전반에 걸쳐 기본적인 삶의 기반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당시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약 7%로 세계적으로도 상위 수준을 유지했으며 대졸자 취업률은 80%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 대학 졸업장은 사실상 취업 보증수표로 통했고 대기업 입사 경쟁률도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낮았다. 일례로 1994년 하반기 삼성그룹 공채 경쟁률은 4대 1이었고 현대그룹과 LG그룹도 각각 6대 1, 7.4대 1 등에 그쳤다. 일자리와 미래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장되던 사회에서는 결혼·출산도 당연하게 여겨졌다. 90년대 초반 합계출산율은 1.7명 수준이었다.
반면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경쟁은 심화되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청년 취업률은 44.8%로 전체 청년 중 절반 이상이 구직 중이거나 사실상 노동시장 밖에 있는 실정이다. 대기업 입사 경쟁률도 90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2023년 기준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대졸 신입 채용 경쟁률은 평균 81대 1에 달했으며 일부 인기 직군의 경우 100대 1을 넘는 사례도 허다했다. 직장인 이형주 씨(30·남)는 "직장도 집도 불안한 상황에서 누군가와 미래를 고민하는 연애는 사실 너무 버겁다"며 "어차피 짧게 할 연애면 외적인 조건만 따지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와 현재 모두 외모가 연애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은 맞지만 그 외모를 중시하게 되는 심리적·사회적 맥락은 분명히 달라졌다"며 "90년대에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낙관이 전제된 상황에서 외모는 일종의 선호의 문제, 다시 말해 선택 가능한 사치이자 취향의 영역이었던 반면 요즘 청년들은 삶의 어려움을 이유로 결혼 자체를 꺼리게 되고 차라리 외모처럼 가장 쉽고 빠르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요소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모만 따져 만나는 요즘 청년세대의 연애는 그들이 처한 구조적 불안과 심리적 무기력감의 반영으로 보여진다"며 "이들의 외모 중심 연애는 단순히 가벼운 유행이나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인 미래 설계가 어렵고 관계에 시간과 감정을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현실의 반영이다"고 진단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