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인상 조치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협상에 실패해 '관세 폭탄'을 맞은 나라는 물론 가까스로 협상에 성공한 나라에서도 막대한 경제적·외교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상호관세율을 낮추는 대가로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한 나라에선 반미 감정까지 생겨나는 모습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상처만 남긴 관세협상…"분열과 견제의 시대로 되돌아갈까 우려"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상호관세율을 32%에서 19%로 대폭 낮춘 인도네시아는 표면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타결국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협상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디지털 분야 데이터 과세 철폐 △미국 자동차 안전 기준 수용 △농산물 선적 전 검사 의무 폐지 △FDA 인증 의료기기·의약품 이중 검사 철폐 △핵심광물 수출 제한 해제 등 미국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FDA 이중 인증 철폐와 핵심광물 수출 제한 해제는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인구 4위로 제약·의료 업계의 핵심 시장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그동안 국민 건강 보호 및 자국 산업 보호를 명목으로 수입 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검증 절차를 고수해왔다. 의약품의 무분별한 유입을 막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을 통해 FDA 인증 의료품에 대한 검수가 불가능해지면서 미국 제약사들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됐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선 '국민 건강과 제약 산업을 담보로 관세를 낮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광물 수출 제한 철폐 역시 상당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니켈, 주석, 구리, 보크사이트 등을 보유한 자원 강국으로 '핵심광물 규제'를 통해 해외 기업들을 자국에 유치해왔다. 규제를 기반으로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을 육성하려는 청사진을 그려왔다. 그런데 이번 협상으로 규제가 사라지면서 더 이상 원활한 광물 공급을 내세워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기 어려워졌다. 인도네이사 현지 언론 '자카르타 포스트'는 대미 관세 협상을 두고 "식민주의로 돌아간 것과 다름없다"며 "인도네시아의 미래와 기회가 팔렸다"고 비판했다.
한국보다 앞서 관세 협상을 타결한 일본 또한 내부의 파열음이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15%의 동일한 상호관세율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에 약 5500억 달러(약 7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한 것을 두고 비판이 들끓고 있다. 특히 최근 한국의 대미 투자액(3500억 달러)이 더 낮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세졌다.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동일한 상호관세율이지만 투자액이 달랐다"는 점을 부각하며 외교적 실패를 지적하고 있다.
베트남과 태국은 관세 협약의 조건으로 중국산 환적 상품에 대한 관세 동참을 약속해 외교적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환적 상품은 화물 출발지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운송할 때 중간 지점을 거치는 상품을 뜻한다. 중국은 베트남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할 환적 상품 원산지를 환적국가로 불법으로 속여 미국의 규제를 피했다. 그 과정에서 베트남과 태국은 무역 수익을 챙겼는 데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발발하면 베트남과 태국은 꼼짝없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게 된다. 중국은 베트남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올해 1분기 중국과의 무역 규모는 512억달러(약 69조 7600억원)에 달했다. 태국 또한 중국과 무역 비중이 무려18%에 육박한다.
유럽 각국에서도 상호관세율 15%에 합의한 유럽연합(EU)을 향한 원망 섞인 목소리가 일고 있다. 미국 농산물 시장을 부분적으로 개방하는 '농산물 수입 쿼터제' 때문이다. 농업이 발달한 프랑스의 공영 라디오 방송 앵테르는 "이번 미국과의 합의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며 "미국은 사실상 무력으로 이뤄지는 정글의 법칙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협상에 실패한 나라도 몸살을 앓긴 마찬가지다. 당장 관세 폭탄이라는 가혹한 현실에 직면한데다 국론분열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브라질 등 남미 국가들은 미국에 수출하는 주요 농산물과 광물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서 수출길이 막혀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위기에 놓였다. 이에 협상 실패국 내부에선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강경론과 '당장 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현실론이 팽팽하게 맞서며 극심한 분열 양상도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협상 실패국으로는 △브라질 50% △시리아 41% △스위스 39% △그리스 39% △캐나다 35% △남아프리카공화국 30% △인도 25% △멕시코 25% △대만 20% 등이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인상 조치가 단순히 경제의 영역을 넘어 세계 각국의 정치·사회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사회·정치는 어떤 국가든 서로 긴밀하게 연관돼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인상 조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이번 관세인상 조치는 그동안 암묵적인 규칙과 신뢰로 지탱해오던 국제사회를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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