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_ Cover Story] 흔들리지 않는 신뢰, 반영구 시장의 기준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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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_ Cover Story] 흔들리지 않는 신뢰, 반영구 시장의 기준을 바꾸다

이슈메이커 2025-08-01 14:1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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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김남근 기자]

흔들리지 않는 신뢰, 반영구 시장의 기준을 바꾸다

미용과 반영구 화장 분야는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명확한 기준이나 신뢰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못한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고객의 피부에 직접 시술하는 섬세한 분야임에도 과도한 출혈과 시술 후 딱지, 기술적 미숙함으로 인한 부작용 등 기존의 잘못된 관행과 고정관념이 만연했다. 이 혼돈 속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택한 사람이 있다. ‘피가 나야 제대로 된 시술’이라는 업계의 통념을 깨고, 출혈과 딱지가 없는 새로운 기술을 스스로 연구하며 ‘수지 기법’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윤소아 키아라(KIIARA)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기존 업계의 비판과 배척에도 굴하지 않고 실력과 신뢰를 무기로 독보적인 브랜드를 일궈낸 그녀의 여정은, 반영구 시장에 꼭 필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하며, 이 시대의 미용 분야에서 진정한 혁신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되묻고 있다.

 

윤소아 키아라(KIIARA) 대표ⓒ 키아라(KIIARA)
윤소아 키아라(KIIARA) 대표ⓒ 키아라(KIIARA)

 

작가의 꿈을 꾸던 시간, 삶의 전환점을 마주하다
윤소아 대표는 10년 가까운 시간을 누구보다 성실히 직장생활을 했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며, 결혼 후 출산과 함께 육아휴직 제도가 처음 시행되던 때의 혜택을 어렵사리 누릴 수 있었지만, 복직 후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육아휴직 제도가 자리 잡지 못했던 탓에, 회사에서 느끼는 눈치와 아이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그녀는 매일같이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윤 대표는 “복직한 후에도 아이가 눈에 밟혀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고, 아이가 아파도 회사에 묶여 갈 수 없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습니다”라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결국 그녀는 복직 한 달 만에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 밖에서 자신의 오랜 꿈인 ‘드라마 작가’에 도전하며, 동시에 아이를 가까이에서 돌보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고, 고심 끝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바로 반영구 눈썹 문신이었다. 윤 대표는 “하루 한 명씩만 꾸준히 시술해도 당시 제 급여와 맞먹는 수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었어요”라고 웃으며 회상했다. 그렇게 시작한 첫 발걸음은 집 근처 주상복합 상가의 7평 작은 공간에서였다. 그녀는 아이와 가까이 있기 위해, 또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출장 서비스로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창업 초기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


  하지만 하루에 단 한 명의 고객조차 만나기 힘든 현실 앞에서 그녀는 곧 벽에 부딪혔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컸다. 그럼에도 윤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반영구 분야를 안정적 수입을 위한 단순한 도구로 여겼던 그녀는, 이때부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될 기술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예감하기 시작했다.
 

 

윤소아 대표는 ‘피가 나지 않는 반영구 수지기법’이라는 독창적 기술로 점장 교육, 브랜드 확장, 글로벌 진출까지 체계적으로 이어 나가며, 키아라(KIIARA)를 단순한 뷰티 브랜드가 아닌 ‘기술 중심의 고급 교육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있다.ⓒ 키아라(KIIARA)
윤소아 대표는 ‘피가 나지 않는 반영구 수지기법’이라는 독창적 기술로 점장 교육, 브랜드 확장, 글로벌 진출까지 체계적으로 이어 나가며, 키아라(KIIARA)를 단순한 뷰티 브랜드가 아닌 ‘기술 중심의 고급 교육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있다.ⓒ 키아라(KIIARA)

 

운명처럼 다가온 ‘키아라’의 탄생
반영구 눈썹 문신을 시작할 때 윤소아 대표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드라마 작가라는 오랜 꿈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공간에서 시작해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동시에 KBS 작가원에도 등록해 본격적인 글쓰기 공부를 병행했다. 


  “아침엔 샵을 운영하고, 남는 시간에 작가원을 다니며 시놉시스도 쓰고 단편 드라마도 써봤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꿈을 이루려 하면 할수록 반영구 일이 점점 더 잘 되는 거예요.” 윤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작가라는 꿈은 생각처럼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한 잦은 퇴고와 수정 요구는 창작에 대한 기대마저 흔들었다. “모든 작가는 자기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 창작을 해야 하는데, 그걸 견디기 힘들었어요.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에 꿈을 조금 미뤄두기로 했죠.” 그렇게 윤 대표는 우선 경제적 안정을 위해 반영구 일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초반부터 큰 시련을 겪었다. 처음 배운 반영구 교육은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울 수 없었던 시장 상황이었다. 비싼 수강료에도 불구하고 손에 잡히는 기술은 없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경험이 그녀를 스스로 연구하게 만들었다. 윤 대표는 “배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제 방식대로 시도할 수 있었어요. 기존 방식과 달리 출혈과 딱지가 없는 기술을 나만의 방식으로 찾아낸 거죠”라고 설명했다.


  윤 대표의 혁신적인 접근은 수지기법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피를 봐야 제대로 된 시술’이라는 업계의 관행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처음엔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지만, 오히려 고객들은 더 나은 결과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방식은 기존의 반영구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렇게 작은 상가에서 시작한 그녀의 이름이 점점 알려지면서 고객뿐 아니라 교육 문의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윤 대표는 2019년부터 반영구 ‘수지’에 대해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축적해온 기술과 이론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하여 직접 교재 집필에 나섰고, 현재는 저작권 등록을 마친 200페이지 분량의 교재를 기반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천 명이 넘는 이들에게 수지 기법을 널리 알렸으며, 수백 명 이상의 전문 시술자를 양성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녀는 작은 샵을 운영하던 당시 사용하던 이름을 내려놓고, 브랜드명을 ‘키아라’(KIIARA)로 새롭게 변경했다. 이는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의 주인공인 심바의 딸 이름으로, 강인하고 당당한 여성 리더의 상징이었다. 윤 대표는 “아이와 라이온킹을 보다가 키아라라는 이름을 접했어요. 운명처럼 다가왔고, 그 이름이 제 브랜드와 딱 맞는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탄생한 ‘키아라’의 이름을 걸고 본격적인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키아라(KIIARA)의 수지기법 기반 반영구 눈썹 시술은 국내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뒤, 현재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키아라(KIIARA)
키아라(KIIARA)의 수지기법 기반 반영구 눈썹 시술은 국내 시장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뒤, 현재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더 넓은 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키아라(KIIARA)

 

수지 기법의 혁신, 업계의 편견을 깨다
윤소아 대표가 반영구 시장에 뛰어들었을 당시, ‘수지 기법’은 이미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었던 기술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결과물이 과하게 진하며, 시술 과정에서 피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었다. 하지만 윤 대표는 기존의 이 방식을 거꾸로 바라보았다. 


  “피가 나는 것이 너무 싫었어요. 피를 보면 손이 떨릴 정도로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출혈이 없게 시술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존의 기준을 깨게 된 거죠.”


  출혈과 딱지가 없는 윤 대표의 수지 시술 결과물은 당시의 업계 기준에서 파격적이었다. 그녀가 결과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하자, 곧 업계에서 논란이 일었다. “처음엔 업계 사람들이 믿지 않았어요. ‘피 없는 반영구가 어디 있느냐’, ‘딱지 없는 시술이 과연 가능하냐’는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죠. 하지만 시술 결과는 고객의 높은 만족도로 입증되었고, 수지 기법을 저만의 방식으로 완벽하게 재정립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녀는 시술 시 사용하는 바늘(니들)의 작은 변형까지 느낄 정도로 민감한 촉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바늘 끝이 조금이라도 휘어 있으면 바로 알 수 있어요. 그것이 고객의 피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직감적으로 알게 되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세심히 접근하다 보니, 기존의 수지 기법과는 완전히 다른, 저만의 독특한 기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 혁신적인 기법과 감각의 발견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초반의 어려움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었기에 스스로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겪었고, 그것이 오히려 그녀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 방식을 모방했다면 지금의 키아라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윤 대표의 수지 기법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해외에서까지 교육 문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성장 속도가 믿기지 않았을 정도였다.

 

윤소아 대표는 키아라(KIIARA)의 모든 점장에게 “키아라는 우리 브랜드가 아니라, 여러분의 브랜드입니다”라고 말하며 본사 중심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키아라(KIIARA)’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있고, 이 원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 키아라(KIIARA)
윤소아 대표는 키아라(KIIARA)의 모든 점장에게 “키아라는 우리 브랜드가 아니라, 여러분의 브랜드입니다”라고 말하며 본사 중심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키아라(KIIARA)’라는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고 있고, 이 원칙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 키아라(KIIARA)

 

흔들리는 자신과 마주해야 했던 시간
윤소아 대표는 수지 기법으로 크게 성공하면서 국내 반영구 시장의 대표적 인물이 되었다. 개인 브랜드 ‘키아라’의 성공을 넘어 더 큰 비전을 꿈꾸던 그녀는, 업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뜻을 모아 새로운 공동 브랜드를 창업했다. 강남에 규모가 큰 매장을 오픈하고, 수지 기법 전문 아티스트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까지 갖추며 야심 찬 출발을 했다.


  하지만 동업이라는 선택은 그녀에게 생각지도 못한 시련의 시작이었다. 처음의 비전과 달리, 동업자들과의 방향성 차이는 갈수록 커져 갔다. 그리고 결국 갈등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세웠던 회사에서 혼자 밀려나듯 나오게 되었다. 윤 대표는 “회사가 커질수록 가치관과 목표가 달라졌어요. 저는 브랜드의 본질과 희소성을 지키려 했지만, 동업자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하며,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오랫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틀렸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죠”라며 당시의 심경을 담담하지만 분명하게 표현했다. 


  그 후 그녀는 혼자 ‘키아라’라는 브랜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진짜 내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말이다. 


  반영구 시술의 특성상, 고객은 시술자의 손에 외모의 인상을 맡기게 된다. 그만큼 신뢰와 책임이 중요한 분야지만, 당시의 시장은 기술의 전문성이나 객관적 기준 없이 수많은 브랜드와 시술자들이 난립한 상태였다. 윤 대표는 “고객이 나를 믿고 얼굴을 맡기는 일인 만큼, 최소한의 기술 정보나 검증 기준이 필요하다는 갈증이 컸어요”라고 강조하며, 키아라로 재기하며 이런 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철학은 브랜드 운영의 전반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불필요한 마케팅보다는 고객의 눈높이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법제화가 진행 중인 반영구 업계의 흐름을 주목하며, 향후 키아라가 양지에서 정직하게 운영되고, 고객이 ‘믿고 찾을 수 있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력을 다했다. 그렇게 그녀는 다시 조용히, 그러나 더욱 단단히 일어설 준비를 시작했다.

 

윤소아 대표는 다양한 봉사와 기부 활동을 통해 브랜드의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며, 나눔의 철학을 펼쳐가고 있다.ⓒ 키아라(KIIARA)
윤소아 대표는 다양한 봉사와 기부 활동을 통해 브랜드의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며, 나눔의 철학을 펼쳐가고 있다.ⓒ 키아라(KIIARA)

 

다시 시작한 ‘키아라’, 진심의 힘을 느끼다
지난해 12월에는 근거 없는 악성 루머가 퍼지며 오해를 받았던 일이 있었다. 유언비어가 단초가 되었지만, 윤소아 대표는 사실 여부를 증명하기보다 묵묵히 자신을 지켜냈다. 당시에 대해 윤 대표는 “지금 생각하면 억울하기보다는, 저 자신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소중하게 남아요”라며 “끝내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고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떳떳한 마음 덕분이었습니다”라고 덤덤히 전했다. 이어 “이러한 믿음 덕분인지 놀랍게도 그때조차 단 한 명의 가맹점장분들도 저를 떠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단단히 뭉치는 계기가 됐죠”라며 깊은 울림이 있는 소회를 전했다. 그렇다. 이 일은 그녀에게 강한 내면의 근력을 만들어준 사건이었고,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에도 더욱 단단한 결을 입혀주었다. 감정적인 반응 대신 묵묵한 실력과 결과로 진실을 입증해 낸 그녀는, 지금도 그 사건을 되짚기보다는 키아라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복귀 후 작게 다시 시작한 ‘키아라’의 1호점부터 꾸준히 점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곳의 작은 가맹점이었지만, 점점 윤 대표를 믿고 따라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 주변에는 진심 어린 지지자들이 남았고, 가맹점들도 매달 하나둘씩 늘어나 어느덧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그녀가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11개의 지점이 생겼고, 현재 키아라 지점은 국내를 넘어 호주 시드니, 미국 아틀란타, 캐나다 토론토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이 놀라운 성장 뒤에는 윤 대표가 겪은 아픔과 시련이 오히려 강력한 신뢰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그녀가 가장 크게 흔들렸던 순간에 그녀의 곁에 남아준 이들과의 고리였다. 그들의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키아라’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기꺼이 통하는 ‘진심의 기술’
현재 키아라는 2025년 7월 기준, 국내외 총 29개 지점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식회사 키아라웨이어컴퍼니’로의 법인 전환을 마쳤다. 이를 계기로 윤 대표는 키아라 브랜드와 동행을 꿈꾸는 모든 예비 점장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브랜드 철학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신중히 선발할 계획이다. 이러한 체계를 바탕으로 키아라는 앞으로도 피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반영구 시술 브랜드로서, 수지 업계의 선두에서 진심과 책임을 다해 나아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키아라의 기술은 이미 국내에서 수많은 고객과 교육생을 통해 신뢰를 입증받았다. 하지만 윤소아 대표는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의 철학과 기준을 해외 시장에도 전하고자 했다. 그가 먼저 주목한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예요. 기술의 차이를 인지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문화라면, 오히려 더 기회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실제로 그녀는 일본 고객들의 정서와 니즈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어 전용 페이지를 별도로 구축하고, 시술 방식과 디자인 언어까지 조율하며 본격적인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향하는 방식은 단순한 기술의 수출이 아니다. 피부 손상을 줄이고, 출혈을 최소화하며, 리터치 없는 시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오롯이 담아낸 브랜드의 철학이 일본 현지에서도 통한 것이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키아라는 유행을 따르지 않아요. 기술 그 자체가 기준이고, 브랜드의 신뢰입니다”라고 강조를 거듭하는 윤 대표는 이 기준을 지키기 위해, 일본이라는 무대에서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도 키아라의 교육 시스템과 시술 방식에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전개하진 않았지만, 미국에서도 교육 문의와 시술 요청이 간헐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키아라는 미국 시장 역시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이라는 섬세한 시장에 첫 씨앗을 뿌리고, 더 넓은 무대를 향한 가능성도 함께 열고 있는 윤소아 대표다.

 

윤소아 대표가 걸어온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스스로의 한계를 넘고, 업계의 잘못된 관행에 도전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동업의 아픔과 외부의 공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믿음과 실력만으로 홀로 다시 일어선 그녀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그녀가 구축한 ‘키아라’라는 브랜드가 이제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윤소아 대표가 펼쳐나갈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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