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를 끄는 메뉴 중엔 겉으로 보기에는 남녀 모두가 즐기는 음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주 소비층인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노골적으로 핑크색 포장 등으로 성별을 강조하는 마케팅이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요소를 공략하는 전략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여성들의 관심사와 부합하는 요소를 강조하거나 소비 트렌드를 역이용하는 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일반 제품보다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경우도 빈번해 보이지 않는 소비 유도 전략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밥 1만2900원, 스무디 1만4000원…여성들 푹 빠진 인기 메뉴, 가격은 평균 이상
지난 2019년 한 TV 프로그램에서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주목받으면서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 소비자들 사이에서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는 식단이나 메뉴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후 관련 메뉴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는데 '키토김밥'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유명 김밥 프랜차이즈들은 일제히 키토김밥 메뉴를 출시했고 키토김밥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음식점도 생겨났다. 밥 대신 계란 지단을 사용한 키토김밥의 주 소비층 역시 키토제닉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르데스크가 서울 시내의 한 키토김밥 전문점에서 확인한 결과 매장 손님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남녀 비율이 비슷했던 맞은편 타 패스트푸드 매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해당 매장에서 판매 중인 키토김밥 한 줄의 가격은 1만2900원으로 일반 김밥 메뉴와 비교했을 때 최소 2배 이상 비쌌다. 그럼에도 매장을 찾은 여성 소비자들은 큰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해당 매장에서 만난 직장인 김선주 씨(31·여·가명)는 "여름휴가를 가기 전에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밥이나 면은 부담스럽다"며 "그렇다고 무작정 안 먹고 살을 뺄 수도 없다 보니 키토김밥 같이 탄수화물이 최대한 적게 들어간 메뉴를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이 조금 부담되긴 하지만 밥을 자주 먹지 않다 보니 크게 부담이 없다"며 "밥 두 번 먹을 돈으로 건강하게 한 번 먹는 거라고 생각하니 비싸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약 10년 전 인기를 끌었던 '아사이볼'도 최근 다시 유행하고 있다. 아사이볼은 아사이베리 등 냉동 과일을 갈아 만든 음료 위에 견과류, 과일 등을 올린 디저트 메뉴다. 견과류 등이 들어가다 보니 다이어트 간식이자 식사대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엔 세계 1위 아사이볼 브랜드가 한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다만 아사이볼의 가격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토핑 구성에 따라 가격이 달라졌는데 완제품 기준 평균 가격은 1만~2만원 사이였다. 왠만한 한 끼 식사 메뉴와 비슷한 가격이다.
아사이볼 역시 주 소비층은 여성들이었다. 키워드 언급량 조회 서비스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아사이볼을 검색한 이용자의 성별 비중은 여성 77.9%, 남성 22.1% 등이었다. 서울의 한 아사이볼 매장에서 만난 직장인 최은진 씨(29·여)는 "점심을 과하게 먹었거나 체중관리 차원에서 저녁을 가볍게 먹고 싶을 때 아사이볼을 주로 먹는다"며 "비싸긴 하지만 보기에도 예쁘고 견과류나 과일 토핑이 다양해 포만감도 충분하다 보니 자주 먹게 된다"고 말했다.
마라, 로제 등 이국적인 재료를 결합한 '퓨전 떡볶이' 메뉴 중 하나인 마라로제떡볶이 주 소비층은 여성들이다. 해당 메뉴는 'SNS 인증샷에 잘 어울리는 비주얼' '자극적이지만 중독성 있는 맛' 등의 평가를 받으면서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마라로제떡볶의 가격은 일반 떡볶이에 비해 월등히 비싸다. 판매점 마다 가격이 다르긴 하지만 보통 1인분 가격은 8000원에서 15000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
의도 감춘 마케팅에 줄줄 새는 여성 소비자 지갑…전문가들 "소비 전에 이유부터 생각해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일부 메뉴가 유독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사전에 의도된 마케팅 전략과 무관치 않다. 과거에는 '핑크텍스(Pink Tax)'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노골적인 여성 타깃 마케팅이 유행했다면 최근에는 보이지 않는 여성 타깃 마케팅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여성들이 유독 관심이 많은 건강, 다이어트 등의 이미지를 강조하거나 트렌드를 공략하는 식이다. 지난 2022년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체중 감량을 위한 식이조절 실천율은 여성(35.9%)이 남성(20.7%)보다 높게 나타났다.
시각적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SNS 중심의 소비문화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더욱 뚜렷한 편이다. CJ ENM 오쇼핑 부문이 발표한 '2023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20~30대 여성은 신제품을 고를 때 '외형적 매력'과 'SNS 공유 적합성'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1.8배 이상 높았다. 20·30 여성들 사이에선 예쁘고 사진 찍기 좋다는 의미의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란 신조어도 널리 쓰이고 있다.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한 일부 메뉴가 여성들의 호응을 얻고 것도 이러한 소비 트렌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여성 소비자들의 관심사나 소비 트렌드를 역이용한 마케팅은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성별을 구분하는 행위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노골적인 여성 타깃 마케팅은 자칫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요인들을 핑계 삼아 과도한 가격을 책정하는 경우도 빈번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이른바 '핑크택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 소비자를 노골적으로 겨냥한 마케팅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질적으론 여성 소비자들의 지갑을 공략하는 마케팅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이러한 마케팅 전략의 변화 속에서 일부 업체들의 과도한 이윤 추구 행위도 적지 않은데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스스로 소비의 이유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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