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이 두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던 '노란봉투법'이 이르면 4일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예상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법안 처리가 가능한데다 이재명 대통령도 후보 시절부터 공약으로 내건만큼 법안 시행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경제계와 국민의힘은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하고 불법 파업을 용인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정부와 여당,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은 상생의 법안이라며 경제계의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尹 2번 거부한 노란봉투법, 與 주도 통과 임박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상정해 심의한다.
앞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진보당과 함께 지난달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를 열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법파업을 조장할 수 있다며 퇴장하고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이날 법사위에서도 여당 주도로 처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5일 종료되는 7월 임시국회 내에 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원청 교섭권 부여, 합법적 쟁의행위 범위 확대, 합법적 쟁의행위에 따른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골자로 한다.
지난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파업이 77일간 이어지자 쌍용차는 생산 차질 등을 이유로 노조와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47억원을 청구했다.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에게 1인당 수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부당하다는 지적에 2014년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노란봉투' 캠페인을 진행해 3개월간 약 14억원을 모금했다.
이후 합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노란봉투법 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지난해에도 당시 야당인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두 차례 모두 거부권을 행사했고 개정안은 국회 재표결을 거쳐 최종 폐기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당인 민주당이 과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고,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도 노란봉투법에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만큼 법안 통과는 시간 문제인 상황이다.
경제 8단체 "노란봉투법 중단해야" 손경식 "미래세대 일자리 위협"
노란봉투법에 대해 일관되게 반대입장을 보여 온 경제계는 법안 통과가 임박하자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계는 손해배상 청구 제한은 수용 가능하지만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교섭권 부여나 쟁의행위 범위 확대는 기업 경영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달 31일 경총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동조합법 개정을 중단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간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최소한의 노사 관계 안정과 균형을 위해서라도 경영계의 대안을 국회에서 심도있기 논의해해 수용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애초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너무 많고 급여를 압류해 근로자들의 생활 유지가 어려워 이를 개선하고자 발의됐던 법안"이라며 "이런 취지에 따라 손해배상엑의 상한을 별도로 정하고 급여도 압류하지 못하도록 대안을 만들어 여당 지도부와 환노위에 제안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청을 교섭대상으로 하는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개념 확대는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어 현행법을 유지해달라고 호소했다"며 "그럼에도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노동계 요구만 반영해 법안이 통과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수백 개의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면 산업현장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이고, 하청노조 파업이 빈번하게 발생하면 원청은 협력업체와 거래를 단절하거나 해외로 사업체를 이전할 수 있다"며 "기업의 투자 결정이나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고도의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어 사용자의 경영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경제 8단체도 같은날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에 대한 정치권의 재고를 촉구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관세 협상이 타결돼 단기적으로 안도를 주지만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라며 "상법과 노조법 입법을 서두르는 것은 대외 환경 변화에 대응할 전략적 선택지를 줄이고 기업의 경영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암참 "美기업 투자 감소시킬 것" 유럽상의 "시장 철수도 가능"
해외기업들도 노란봉투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될 경우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가 급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임스 김 암참 회장은 지난달 3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한국의 경영 환경과 투자 매력도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입법 중단을 촉구한 국내 8개 주요 경제단체의 공동 성명에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유연한 노동 환경은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비즈니스 허브로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며 "법안이 현재 형태로 시행될 경우 향후 한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투자 의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혁신과 경제 정책 측면에서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무대"라며 "이러한 시점에 해당 법안이 어떤 시그널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도 지난달 28일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기업의 사법 리스크가 커지면 국내에 진출한 유럽 기업들이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CCK는 입장문에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법적 책임 범위를 추상적으로 넓힘으로써 법률적 명확성, 특히 법치주의 원칙에서 명확성 요건을 훼손한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게 부과되는 다수의 형사처벌 조항을 고려하면, 모호하고 확대된 사용자 정의는 기업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고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투기업들은 노동 관련 규제로 인한 법적 리스크에 민감하다"며 "예를 들어, 교섭 상대 노조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교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제2조가 현재와 미래 세대의 고용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바, 개정안의 재검토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국힘 "본격적인 기업 옥죄기" "여야협의기구 구성해 논의해야"
국민의힘도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두 달도 안 돼 본격적인 기업 옥죄기에 나섰다"며 재계와 보조를 같이하고 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1일 논평에서 "일자리가 있어야 근로자가 있고 근로자가 있어야 기업이 있는 것처럼 기업을 적대시하는 인식과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법률로는 이 대통령이 공언한 경제 성장과 경제 강국은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이같이 적었다.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전날 여당을 향해 여야 협의 기구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송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일단 입법을 통과시켜놓고 부작용이 생기면 그 때 보자고 하는 것은 집권여당으로서, 정부가 취할 행동이 아니고 매우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속도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며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한다"고 했다.
아울러 민주당이 본회의 상정을 시도할 경우 필리버스터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송 비대위원장은 30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수 야당으로서 협상이 안 될 경우 유일한 방법은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이라며 "쟁점 법안이 (본회의 안건으로) 상정되면 법안 하나하나에 대해 무제한 토론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 "7월 임시국회 내 통과" "노동생산성 향상 될 것"
반면,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법안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며 7월 임시 국회 내 통과를 강조하고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31일 정책조정회의에서 "8월 4~5일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3법·양곡관리법·농안법·2차 상법개정안·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3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법안은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보장하고 사용자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해서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고 노사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법안"이라며 "노동자들이 헌법상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또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는 일이 더는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언주 의원은 같은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은 노동과 자본간 균형을 회복하고 산업현장의 불공정을 줄여서 노동생산성 향상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법"이라며 "그간 노조 활동에 대한 과잉 대응 측면이 있다는 것을 기업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며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 가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경총에 휘둘리지 말고 신속 통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국회를 향해 경총에 휘둘리지 말고 신속히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31일 성명에서 "경제계가 '산업생태계를 무너뜨리고 국가 산업 경쟁력을 해친다'고 반발하고 있는데, 이는 기득권 유지를 위한 시대착오적 억지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이어 "노동자들에게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실질적 사용자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정당한 법적 장치"라면서 "단순히 도급 계약의 형식만을 내세워 원청의 책임을 면제하려는 것은 기만적 태도이며 이는 진정한 산업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노총은 "경총은 노동쟁의 개념 확대와 손해배상 책임 제한이 '파업 만능주의'를 조장한다고 주장한다"면서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기업 손실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지속가능한 경영은 존재할 수 없다"며 "개정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므로 국회는 이를 신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통령실, 노란봉투법 우려에 "유예기간 있어 조율 가능"
고용장관 "재계 우려 잘 알아…책임지고 현장 살필 것"
대통령실은 노란봉투법 에 대한 경영계의 우려에 대해 유예기간이 있고, 그 사이에 한계가 있다면 충분히 조율할 수 있는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도 경제계를 달래면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Q&A를 통해 여론 조성에 힘쓰는 모습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브리핑에서 "이 법은 노사 대화 촉진법이자 상생의 법"이라면서도 "경제단체의 우려를 잘 안다. 책임지고 현장을 살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이번 노조법 개정은 지난 2020년 첫 법안이 상정된 이후 오랜 논의와 숙고가 이뤄졌다"며 "이번 개정이 '지속가능한 진짜 성장'으로 가는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회 입법 취지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그동안 하청 노동자는 원청의 사업장에서, 원청을 위해, 원청 노동자와 함께 일하면서도 자신들의 근로조건에 실질적 결정권을 가진 원청과는 대화조차 할 수 없었는데, 현장에서 실질적 권한을 가진 사용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함께 지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대해서도 정당한 논의의 문을 열어 노사 간 자율적 대화가 더욱 촉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사 자율 원칙을 존중하되, 노사관계가 불확실성에 놓이지 않도록 정부는 후견인으로서 제도적 신뢰와 예측가능성을 뒷받침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장관은 "개정안은 상생의 법"이라며 "노사 당사자가 스스로 책임지고 대화하고 해결하는 '노사자치'의 원칙에 따라 원하청이 단절에서 벗어나 협력의 관계로,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대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통해 국내 산업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상생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영계를 향해서도 "이번 법 개정을 구조적 변화와 혁신의 계기로 삼아달라"고 했고, 노동계를 향해선 "법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법의 취지에 맞게 자율과 책임에 기반한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정착시켜 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31일 '노조법 2·3조 개정 주요 질의답변' 자료를 냈다.
다음은 주요 질문에 대한 고용부의 답변이다.
-원청 대기업 등이 1년 365일 내내 수십, 수백개의 하청기업과 교섭하게 되는 것 아닌가.
"과도한 우려다. 다수의 하청기업에 대해 무조건 사용자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근로조건과 관련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사용자로 인정된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상의 결정'이 노동쟁의 범위에 포함되면 공장증설, 해외투자도 노조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과장된 우려다. 단순한 투자나 공장증설 그 자체 만으로 노동쟁의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사업경영상의 결정 중에서도 정리해고와 같이 근로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근로조건의 변경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경우가 노동쟁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단순한 가능성 만으로 노동쟁의 대상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현실적으로 구체화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앞으로 모든 노조 활동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노조법에 의한 활동'일 때 손해배상청구가 제한된다. 현재도 단체교섭, 쟁의행위 뿐만 아니라 노조법에 의한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은 민형사상 면책으로 보호하고 있고, 판례에서도 정당한 활동인 경우 민사상 책임을 면책한다"
-사용자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 근로자가 가한 손해에는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했는데, 자력구제를 인정하는 과도한 입법 아닌가.
"해당 조항은 민법 제761조 정당방위와 같은 개념이다. 현재의 긴급한 위난에 대해 국가 구제를 구할 여유가 없고, 대항행위 외에는 적당한 방법이 없을 때 상당한 범위 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것이다. 이처럼 개정안은 사용자 측이 폭력 등으로 파업권을 방해하는 등 긴급한 상황에서 다른 대응수단이 없어 불가피한 대응을 한 경우에만 상당 범위 내에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노조와 근로자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입법 아닌가.
"아니다.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2023년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입법화한 것이다. '개별책임'으로 인해 사용자가 개인별 손해를 모두 입증해야 한다는 우려 등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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