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여름 방학.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 학생들은 시험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 만나기 위해 서로의 시험 기간을 확인하는 것도 학생들의 자연스러운 문화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교에 진학한 뒤로 이 문화를 마주할 때마다 애매한 미소만 지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졸업한 대학교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태의 시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 100권을 읽는 인문학 교육으로 주목받는 세인트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에서는 일반적인 시험이 아닌, 학년말에 애뉴얼 에세이(Annual Essay)라는, 학생들이 매년 작성하는 소논문의 결과와 수업 참여도를 바탕으로 다음 학년 진급 여부를 결정합니다. 학생들은 일 년간 수업에서 읽은 책 중 한 권을 골라 직접 소논문 주제를 정하고 책에서 생각의 근거를 찾아 자신만의 글을 풀어갑니다. 이 에세이를 작성하는 기간(writing period)이 타 학교의 시험 기간과 비슷합니다. 특히, 졸업 학년인 시니어(senior)들에게는 1월 한 달간 수업 없이 온전히 20장 이상의 에세이 작성에 집중하는 기간이 주어집니다. 이 에세이가 통과 되어야지만 학생들이 졸업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통과된 에세이를 바탕으로 3명의 튜터(교수님)들과 공개적으로 토론을 하는 구술시험(Oral examination)을 치러야 합니다. 즉, 나의 친한 사람들과 학교 사람들, 어쩌면 평소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동네 사람들 앞에서까지 내가 선택한 책과 나의 글, 그리고 나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졸업을 위한 최종 관문입니다.
한국에서 시험공부를 위해 시험 범위의 내용들을 여러 번 읽으며 숙지하는 것처럼, 에뉴얼 에세이의 주제를 선정하여 계획서를 작성하는 기간 및 에세이 작성 기간에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선택한 책 한권을 반복해서 읽게 됩니다. 내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대한 나의 결론은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정성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4학년 때 졸업을 위해 선택한 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이었습니다. 햄릿이 보는 유령의 정체는 무엇인지, 극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정작 등장하는 비중은 현저하게 낮은 유령의 존재와 햄릿의 내면세계와의 연관성을 알아내고자 했습니다. 2학년 수업에서도 읽고, 해당 학년 애뉴얼 에세이로도 햄릿과 유령에 대한 글을 썼었지만 깊이 있는 탐구를 충분하게 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에 저는 『햄릿』을 다시 한번 선택했습니다.
이 기간에 제가 가장 놀랐던 점은 고등학생 때 읽고 생각한 내용, 2학년 때 분석한 내용, 그리고 4학년 때 분석한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보니, 이전보다 『햄릿』을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읽었습니다. 이 과정들이 저의 사고를 말랑하게 만들어 준 것입니다. 작은 디테일을 하나도 놓치기 싫은 마음에 셰익스피어가 작성한 원문, 현대 영어 번역본, 그리고 한국어 번역본까지 참으로 골고루 돌아가며 읽다 보니 책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도 교수(advisor tutor)와의 대화를 통해 이전까지는 보지 못한 극의 정치적 배경과 주변 인물들의 등장하는 시기에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도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햄릿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 담긴 복선을 찾게 되었습니다. 중반에는 필로어스에서 『햄릿』 원데이 세미나도 진행하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참가자 분들과 책에 대해 토론을 나누며 저만의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시야를 확장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책 한 권 다 읽는 시간도 부족한데 한 번 읽은 책을 또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오히려 우리의 길고도 짧은 인생에서 독서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책을 읽는 양보다는 질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 중요성 때문에 세인트 존스 대학에서도 일반적인 시험 대신 한 권의 책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내 생각을 확립해 가는 시간을 학생들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같이 많은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을 구매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권의 책은 새 퍼즐과 같습니다. 완성된 그림이 보이지만 막상 내용을 살펴보면 그 퍼즐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구매자의 몫입니다. 즉, 작가는 이미 메시지를 책에 담아두었으니 퍼즐 조각을 맞추어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은 구매자인 독자의 몫입니다. 연결되는 조각을 찾기 위해 우리는 같은 그림을 여러 번, 꼼꼼히 살펴보게 됩니다. 때로는 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라는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10살 때 읽은 책을 20살에 읽고, 한 달 뒤에 다시 읽으며 내가 놓친 조각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 한 권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조금은 느리지만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입니다.
독서 토론에 참여하는 것 역시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의 일부입니다. 작은 조각으로 세세하게 나누어진 큰 그림일수록 혼자서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도 많이 듭니다. 독서 토론에 참여하게 되면 서로가 찾은 퍼즐 조각들을 공유하고, 다 함께 아직 찾지 못한 조각들을 연결합니다. 나와 다른 배경,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조각을 찾기 위해 책을 여러 번 다시 살펴보게 됩니다. 굳이 참여자가 많은 토론이 아니어도, 지도교수님과 단둘이서 진행한 대화에서도 『햄릿』의 배경에 위화감을 느낀 것처럼,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며 책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 완성된 퍼즐은 단순히 책 한권을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각들은 ‘나’라는 하나의 퍼즐의 구성이 되어줍니다. 제가 『햄릿』을 여러 번 읽지 않았다면 등장인물 햄릿의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없었다면 저 역시 제가 가진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는 방식에 차이가 생겼을 것입니다. 제가 햄릿에서 찾은 퍼즐 조각을 이용해 ‘나’를 완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저 자신에게 던졌습니다. 나의 친구를 햄릿이라고 한다면, 나는 과연 호레이쇼와 같은 친구인가? 햄릿에게 다른 인물이 있었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있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주변의 비극 속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나’라는 퍼즐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저는 오늘도 새로운 책을 찾는 것과 동시에 과거에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아 읽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리고 내일의 저 역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아직 찾지 못한 퍼즐 조각을 찾아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는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새로운 마음으로 독서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과거의 내가 찾지 못했던 퍼즐 조각을 발견하고 전율을 느꼈던 문장들을 다시 읽으며 내일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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