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한미 관세협상이 31일 전격 타결되면서 이제 관심은 2주 내 있을 한미정상회담으로 향하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두 달이 가깝도록 미뤄져 온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이번 무역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북핵 문제, 대미투자 세부사안 등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동맹에게 더 많은 안보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가 핵심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한국을 '부유한 나라'라고 언급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지금보다 9배 많은 100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주한미군 4500명을 재배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북한은 한국과의 대화는 거부하고 미국에는 대화를 제안하면서 북미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통상분야뿐만 아니라 안보 분야로 확대된 여러 과제를 한번에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트럼프 "2주내 이재명 대통령과 양자 회담" 대통령실 "곧 협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SNS에 관세협상 내용을 설명하면서 한국의 투자 액수는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이 양자 회담을 위해 백악관으로 올 때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다음 주라도 날짜를 잡으라'고 했다고 한다"며 "곧 한미 외교라인을 통해 구체적 날짜와 방식 등을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8월 중순 전후로 한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간 각종 돌발 변수로 미뤄져 온 양국의 정상회담이 관세협상 타결을 계기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 트럼프 대통령과 대면할 계획이었으나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달 16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했지만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의 이스라엘·이란 무력 충돌 상황을 이유로 일정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만나지 못했다.
이후 같은 달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번에는 이 대통령이 중동 정세 등을 고려해 불참하면서 다시 무산됐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이 지연되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8월 1일 마감 시한을 앞두고 관세 협상이 마무리된데 이어 한미정상회담 일정도 잡히면서 이 대통령의 부담도 덜어지게 됐다.
대미 투자 및 농산물 등 세부 사안 논의할 듯
한미정상회담이 성사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이번 회담에서는 만만치 않은 의제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에게 새로운 숙제가 주어졌다는 분석이다.
정상회담에서는 이날 타결된 통상협상의 세부 내용을 확정하는 등 후속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번 협상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약 49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1000억 달러(약 140조 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것 외에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이며 그 내역은 한미정상회담에서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이나 협상단은 브리핑에서 3500억 달러 외에 다른 투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3천500억 달러 규모 펀드와 관련해서는 "한미 조선 협력 펀드 1천500억 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선 분야 외에도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펀드도 2천억 달러 조성될 예정"이라며 "해당 분야에도 우리 기업이 전략적 파트너로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양국 실무 회동에서 추가 투자를 놓고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또한, '농산물 개방'에 대해서도 양국 간 입장차가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농산물 등을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고 밝혔으나 대통령실은 "쌀과 소고기 등 농축산물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한미통상협상은 큰 틀에서 마무리됐지만 검역 절차 개선 등에 대한 미국과의 추가 협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익의 이름으로 검역기준 완화를 정당화하거나 협상의 뒷문을 통해 농업 개방이 시도돼서도 결코 안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100억불·국방비 5%·주한미군 4500명 감축 재배치 등 '동맹 현대화'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협상안에 담기지 않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국방비 인상, 주한미군 4500명 감축 재배치 등 이른바 '동맹 현대화'도 정상회담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용범 실장도 브리핑에서 "이번 협상은 러트닉 상무장관이 주(主)가 되다보니 통상 문제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서 "안보 관련 문제들은 한미정상회담이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 논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동맹 현대화란 미국이 대중 견제를 위해 동맹국에 역내 안보 책임 확대를 요구하며 국방비 증액과 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운동 당시 부터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이라고 했고, 최근에는 한국을 '부유한 나라'라고 언급하면서 "한국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너무 적게 지불하고 있다"며 "당신은 1년에 100억 달러(약 13조7천억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지금보다 9배나 많은 방위비 분담금을 거론한 것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미군 감축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중국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4500명을 감축하고, 이 4500명을 미국 영토인 괌을 비롯해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졌다.
아울러 미측은 다른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우리 측에도 GDP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증액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한국 국방예산은 61조2천469억원으로 GDP 비중은 2.32%다.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5%로 늘리려면 국방예산을 약 132조원으로 지금보다 배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미국측은 '동맹 현대화'를 직접 거론하고 나섰다.
이날 한미 국방장관 전화통화에서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국방부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과 취임 후 첫 전화통화를 한 사실을 전하면서 "양국 장관은 변화하는 역내 안보환경 속에서 한미동맹을 상호 호혜적으로 현대화하기 위한 협의를 지속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도 다음달 1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정 및 의제를 조율하면서 동맹 현대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21세기 현 국제 정세와 복합 위기에 당면해 동맹관계를 현대화하고 한 단계 발전시킬 필요성을 인식해서 현재 관련해서 긴밀한 논의를 하고 있다"며 "이번 외교장관회담 계기에도 관련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준형 "동맹 현대화로 더 큰 압박할 것" 최종건 "새로운 국면"
외교 전문가들도 방위비와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가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립외교원장 출신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31일 SBS라디오에서 "결국 분담금하고, 미국이 주한미군을 활용해 중국이나 러시아를 견제하는 지역 구도로 바꾸겠다는, 소위 '동맹의 현대화'라는 이름을 붙여 관세보다 더 큰 압박이 올 수 있다"며 우려했다.
김 의원은 "분담금을 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지금 법에선 트럼프가 원하는 지금의 9배를 줄 수도 없다. 이건 SMA(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라는 한미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며 "이 부분을 정부가 처음부터 국민에게 알리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도 CBS라디오에서 방위비가 양국의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최 전 차관은 "관세는 일단락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며 "방위비 영역, 또 방산물자 구입, 주한미군의 재조정, 한미 동맹 등 소위 군사적 부분에서 역할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미국 측의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가 약 1조 5000억 원을 방위비로 매년 지불하고 있다. 이 액수는 주한미군이 대한민국에 주둔하면서 필요한 비용의 50%가 넘는다. 독일과 영국, 세계 곳곳에 해외 미군 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미군의 입장에서 보면 여기가 가장 럭셔리한 곳"이라고 말했다.
최 전 차관은 "우리가 OECD나 나토 소위 선진국들 중 국방비 비중이 가장 높다고 단연코 얘기할 수 있다"며 "약 8조 원 정도가 매년 미국의 방산 무기 구입으로 가기 때문에 미국에 있어서 우리는 빅 클라이언트다. 다만 3500억 달러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해 어깨가 커졌으니 그만큼 군사적 역할을 미국이 요구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북핵 문제도 핵심 의제...'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하나
트럼프 "한미동맹 철통...첫 임기때 북한 땅 밟은 것 자랑스러워"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핵 문제도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최근 북한은 연일 대남·대미 담화를 통해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원하고 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대화가 성사될 때 한국 정부가 배제되지 않도록 공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이 대통령은 11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북미 정상이 판문점과 같은 제3의 장소에서 만날 수 있게 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미 대화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한미연합훈련 조정 문제가 의제로 거론될 가능성도 높다.
한미연합훈련 조정을 위해선 연합훈련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미국측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실제로 지난 2018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직후 "북한과의 협상 중에는 이러한 훈련이 부적절하고 도발적일 수 있다"며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28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을 기념하며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 회동을 다시 거론한 것도 심상치 않다.
그는 "힘을 통한 평화라는 외교 정책 아래 한반도를 수호하고, 안전·안정·번영·평화라는 고귀한 대의를 함께 추구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에는 여전히 공산주의의 악폐가 만연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오늘날까지 철통 같은 동맹으로 단결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체결된 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38선의 DMZ에는 여전히 남북한을 가르는 군사 분계선이 존재한다"며 "첫 임기 당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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