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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조공책봉 관계로 대표됨. 조공은 주변국이 중국 황제에게 예무를 바치고 조공국의 예를 다하는 것이고, 책봉은 중국 황제가 해당 국가의 군주를 정식으로 승인해주는 것임.
이번엔 주로 14세기 이후 동아시아의 조공 관계를 써봄.
예컨대 조선 국왕은 중국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그 정통성이 생겼음. 여기서 생기는 오해가 조공책봉 관계를 지배국과 종속국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임. 실질적인 지배 관계는 아니고 내정 간섭도 거의 없었음.
오늘날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는 국가가 되려면 UN에 가입하고 UN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어야 어엿한 국가가 되듯이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비슷한 의례가 조공과 책봉이었던 것임. 이는 19세기 서구 세력의 진입과 함께 주권국가 체제가 등장하며 붕괴하기 시작함.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한 동아시아의 조공책봉 관계에 주변국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했음. 발달된 중국의 학문을 들여오고, 무역을 하며, 중국 황제가 주는 하사품을 받기 위해서인것. 중국 황제는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조공 예물보다 더 많은 하사품을 조공국에게 주었음.
일본은 무로마치 막부 시기 명나라에 조공을 했음. 명나라의 왜구 문제가 심각해지자 명은 정식 조공국이 아니면 교역을 하지 않는 해금령을 내렸고, 일본은 감합이라는 증서가 있는 배만이 교역 가능했음. 무로마치 막부는 명과 조공 관계를 맺고 감합 무역을 시작했으며, 쇼군은 "일본 국왕"으로 책봉되었음. (천황과는 다름)
류큐 역시 명에 조공하며 막대한 이득을 얻음. 일본에 비해 조공 주기가 짧아 중국의 문물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었고 이를 일본과 교역하며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음. 중계무역으로 성장한 류큐는 이후 중국이 해금을 해제할 시기까지 번성했음.
조선은 중국과 가장 밀접한 조공국이었음. 고려를 무너뜨린 조선 왕조는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 명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음. 1년에 3~4회 정도 사신을 파견했고, 막대한 하사품을 받아옴. 명을 섬기고 (사대), 여진과 같은 오랑캐와는 사귀는 (교린) 사대교린 정책을 시행함.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게 패배하며 조선은 청의 조공국으로 편입됨. 명나라 때와 비슷하게 정기 사절단 (연행사)를 파견하고 조공책봉 관계를 지속함. 북벌론을 외치며 청을 오랑캐 국가로 무시, 조선을 새로운 중화로 여기는 소중화 사상이 있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청 중심의 국제질서에 순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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