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⑤ 동아시아의 회화, 병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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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⑤ 동아시아의 회화, 병풍

문화매거진 2025-07-31 13:37: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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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④ 동아시아의 회화, 두루마리에 이어 
 

▲ 일월오봉도, 하지윤, 작가 소장
▲ 일월오봉도, 하지윤, 작가 소장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병풍이 의례적 공간에 사용될 때, 그것은 의식의 시작과 종료를 나타내는 시각적 장막이 된다. 대표적 예인 조선 왕실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는 왕이 즉위하거나 국가 제례가 열릴 때마다 어좌 뒤편에 놓이는 병풍이다. 해, 달, 다섯 봉우리, 소나무, 파도는 항상 같은 구성과 색채로 그려지며, 병풍은 의례의 반복성과 왕권의 영속성을 시각적으로 고정한다. 매번 동일한 형식을 되풀이하는 이 구조는 정치적 질서와 상징적 질서가 순환하며 되풀이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병풍은 화면이 구획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시간성을 드러낸다. 여러 폭으로 나뉜 화면은 각각 독립된 장면처럼 구성되지만, 반복되는 구조를 갖는다. 조선 후기의 ‘책가도’ 병풍은 책장과 기물들을 각 폭마다 유사하게 배열하면서도, 화면 구성의 반복을 통해 일상의 지속성과 문화적 이상을 주기적으로 재확인한다. 이러한 병풍은 감상자에게 특정한 내러티브를 제공하기보다, 정해진 질서와 의미의 반복을 통해 시간의 순환성을 시각화한다.

▲ 정조의 문체반정 의지를 담은 그림인 책가도, 19세기말~20세기 초 / 사진: 문화재청 제공
▲ 정조의 문체반정 의지를 담은 그림인 책가도, 19세기말~20세기 초 / 사진: 문화재청 제공


두루마리와 병풍은 모두 감상자의 ‘행위’와 밀접히 연동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시간적 장치다. 두루마리는 감상자의 손에 의해 펼쳐지고, 시선이 이동하며 그림 속 서사가 시간처럼 전개된다. 병풍은 감상자가 직접 여닫지 않더라도, 언제 열리는가, 어떤 상황에서 펼쳐지는가에 따라 시간적 의미가 부여된다. 즉, 두루마리는 ‘진행하는 시간’, 병풍은 ‘되풀이되는 시간’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이러한 형식은 시간에 대한 추상적 인식을 구체적인 시각 구조로 변환한다. 두루마리는 선형적 시간 경험, 병풍은 순환적 시간 질서를 구현하며, 동아시아의 전통 회화는 이처럼 감상자의 몸, 눈, 의례적 맥락을 모두 아우르며 시간 인식의 도식이 된다.

시각예술은 단지 정지된 이미지의 집합이 아니라, 어떻게 보이고, 언제 보이며, 어떻게 다시 사라지는지를 통해 시간 개념 자체를 구성한다. 두루마리와 병풍은 그 형식적 특성 안에 시간 구조를 내장하며, 동아시아적 시간관을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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