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④ 동아시아의 회화, 두루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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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④ 동아시아의 회화, 두루마리

문화매거진 2025-07-31 13: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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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직선과 원③ 순환과 신화에 이어 
 

▲ 청명상하도, 현재 중국 북경 고궁박물관 소장 / 사진: 수성미술관 제공 
▲ 청명상하도, 현재 중국 북경 고궁박물관 소장 / 사진: 수성미술관 제공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제례와 신앙은 추상적인 시간 개념을 실질적인 경험으로 환원시킨다. 죽은 자가 돌아오는 정해진 시간, 열리고 닫히는 제사의 공간, 같은 형식의 반복은 모두 시간 인식의 문화적 구조를 구성한다. 동아시아에서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오고 다시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이 인식은 시간의 개념을 단순한 측정 단위가 아닌, 삶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틀로 만든다.

동아시아 회화는 형식 그 자체가 시간을 품고 있다. 그림이 어떻게 펼쳐지고, 감상자는 어떤 방식으로 그것을 보게 되는지가 단순한 미감이나 장식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인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구조인 것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두 형식인 두루마리와 병풍은 각각 시간의 흐름과 시간의 반복이라는 상이한 개념을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두루마리는 보통 좌우로 길게 말아놓은 화폭을 감상자가 직접 손으로 펴가며 감상하는 형식이다. 이는 그림 전체가 한눈에 보이지 않고, 일정한 시점에서 시선이 앞으로 ‘진행’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시간성을 갖는다. 감상자는 화면을 차례로 열어가며, 이전 장면과 다음 장면의 관계를 파악하고 서사적 연속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러한 감상 방식은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시선의 이동과 함께 발생하는 연속적 시간 경험을 전제로 한다.

북송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는 이 구조를 극대화한 대표적 사례다. 이 작품은 북송 수도인 변경(汴京)의 청명절 풍경을 수미터에 이르는 길이의 화면에 담고 있으며, 도시 외곽에서 시작하여 성 안의 번화가를 지나 강을 건너는 구성으로 이어진다. 감상자는 이 그림을 한 번에 볼 수 없으며, 그림 속 길을 따라 이동하듯 시선을 전개시켜야 한다. 이때 두루마리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시간을 따라 걸어가는 서사의 길이 된다. 과거-현재-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앞으로 펼쳐지며 전개되는 시간의 흐름이 두루마리의 본질이다.

이에 비해 병풍은 정적인 감상을 유도하는 형식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구조를 내포한다. 병풍은 일정한 폭의 화면을 이어 붙인 접이식 구조로,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주로 의례, 행사, 공간 구획 등 특정한 맥락에서 일시적으로 전시되며, 시간이 시작되고 끝나는 특정 지점을 시각적으로 선언한다. 병풍은 시선의 이동보다는 시간의 개폐와 반복을 시각적으로 조직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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