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유럽연합(EU)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얻은 대가로 약속한 미국산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LNG)의 대규모 구매 방안은 실행 가능성이 낮으며 에너지 공급망의 왜곡적 의존도를 심화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31일 IEEFA(에너지경제금융분석연구소)가 올해 7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EU는 지난해 전체 석유·석탄·LNG 수입액 약 3150억 유로(약 504조원) 중 미국산은 650억 유로(약 104조원)로전체의 21% 수준이었다.
EU가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약속한 연간 미국산 에너지 구매액은 2150억 유로(약 2500억 달러)로 이 수준의 구매가 실제 진행된다면 미국산 비중은 현재의 3.3배가량으로 확대돼 전체 수입의 약 70%를 차지하게 된다.
IEEFA는 이 같은 급격한 구매 확대는 유럽 각국의 에너지 수요 감소 추세, 재생에너지 전환 증가, 민간기업 자체의 구매 의지 등을 고려할 때 "성취 불가능한 합의"라고 평가했다.
또한 미국과 EU 집행위원회가 맺은 협의에는 법적 강제력이 없어 실제 시장에서는 민간기업의 참여 없이 실현되기 힘들다는 점도 강조했다.
IEEFA 보고서는 오히려 해당 자금을 미국산 에너지 수입이 아닌 재생에너지 확대에 투입할 경우, EU의 태양광 및 풍력 발전 용량을 현재보다 약 90% 가까이 늘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기후 목표 달성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끝내기 위한 EU의 움직임은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전면 중단하겠다는 목표 아래 신규 계약 금지 및 기존 계약 해제를 담은 '리파워EU'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2년 기준 EU 전체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한 비중은 45%에 달했지만 2024~2025년 현재 약 18% 수준으로 낮아졌다. 원유와 석탄은 이미 사실상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EU 집행위원회 당국자들도 미국산 LNG를 포함한 에너지 파트너십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실제 수입 확대는 민간 기업 의사에 크게 좌우된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
이번 미국과의 합의는 관세 장벽 철폐라는 대가를 얻기 위한 교섭 카드였으나 실무적 구현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EU 내 환경 NGO 및 에너지 전문가들은 "현 시장 수급 구조에서는 미국산 에너지로 급격히 전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어렵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EU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산 석탄·LNG 수입을 3년 만에 세 배로 늘리겠다는 계획은 EU의 중기적 탈탄소화 목표 달성에도 심각한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에너지 담판은 EU가 러시아 의존을 줄이려는 전략과 미국에 대한 관세 협상 카드로서의 활용이라는 두 축에서 평가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 중심의 에너지 시장 구조, 수입 비용과 가격 경쟁력,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정책적 선택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재생에너지 전환에 대한 투자 확대가 경제·환경·정책적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IEEFA는 "70% 수준의 미국산 에너지 의존은 공급망 단일화의 위험을 높이고, EU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 경로를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이번 합의가 실제 수입으로 이어질지는 EU 회원국 정부와 민간 에너지 기업들의 정책적 선택에 달렸으며 미국산 에너지 확대가 아닌 재생에너지 전환의 선택이 향후 EU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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