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중국의 중원제(中元节)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음력 7월 15일, 지옥문이 열려 굶주린 혼들이 이승으로 나온다고 믿어 사람들은 제물을 마련하고 제를 올린다. 중원제는 이름 없는 고혼(孤魂)까지 아우르는 의례라는 점에서 사회 전체가 죽음의 질서를 다시 한번 점검하고 위로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죽음은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일정한 시기마다 돌아와 다시 처리되어야 할 질서로 이해된다.
제주도의 신화인 삼승할망은 출산과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인간의 삶과 생명을 순환적 질서로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다. 이 신은 출산의 순간 혼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감시하며, 때로는 생사의 결정권까지 쥐고 있다. 출산과 죽음은 생명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혼의 출입이 일시적으로 허용되는 지점이며, 인간은 그 경계를 반복적으로 통과한다. 삼승할망 신앙은 생명을 통제하는 신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면서 동시에 그 질서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유지되어야 한다는 시간 인식을 내포한다.
이러한 의례와 신화는 모두 정해진 시간 구조를 바탕으로 작동한다. 일정한 계절, 절기, 주기 속에서 죽은 자는 소환되고, 살아 있는 자는 그들을 다시 받아들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반복이 단순한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의미를 덧입으며 동일한 형식을 되풀이한다는 점이다.
제사는 해마다 같지만 참여하는 사람의 연령, 감정,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신의 이름과 도상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수행되는 공간과 공동체는 매번 다르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만,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는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의례는 되풀이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재정의하는 문화적 장치다.
순환적 시간관은 죽음뿐 아니라 삶 자체를 주기적인 리듬 안에 두게 만든다. 생로병사의 각 국면은 선형적 진행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와 연동되는 주기로 인식된다. 태어남은 다시 죽음으로, 죽음은 다시 기념과 소환을 통해 삶의 일부가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다시금 조화를 이루며, 문화는 이러한 흐름을 제의로 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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