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민주당 주도로 국회 처리 수순에 들어간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이 직접 나서 법안 재검토를 촉구했다. 1939년생으로 팔순을 넘긴 최고령 경제단체장인 손 회장은 이달 들어 정부와 정치권에 여러 차례 법 개정 속도 조절을 요청한 데 이어 30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조법 개정을 중단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사 간 충분한 협의를 이뤄야 한다”고 밝혔다.
손 회장이 단독으로 기자회견을 연 것은 2018년 경총 회장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이번 긴급 기자회견은 노동조합법 개정에 대한 경영계의 절박한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산업 현장의 위기감이 극도로 높아졌다”고 전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손 회장은 “수십, 수백 개의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원청 사업주는 건별 대응이 불가능해 산업 현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하청 노조의 파업이 빈번해지면 원청 기업은 협력업체와 거래를 끊거나 해외 이전을 검토할 수밖에 없고, 피해는 중소·영세업체 근로자와 미래 세대에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개정안이 노동쟁의의 개념을 넓혀 사용자 고유의 경영권에 속하는 투자 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의 경영상 판단까지 쟁의 대상에 포함시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손 회장은 “경영권 침해 가능성이 크고, 잦고 과격한 쟁의행위가 노사관계 안정을 해치며 산업 생태계와 미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손 회장은 국회에 “최소한의 노사관계 안정과 균형을 위해 경영계의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 수용해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는 “노란봉투법은 애초 불법파업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문제를 개선하려는 취지였지만, 경영계 대안을 무시하고 노동계 요구만 반영한 채 통과된 점에 매우 유감”이라며 “사회적 대화를 통한 충분한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총은 앞서 13개 업종별 단체들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법안 속도 조절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 31일에는 손 회장이 직접 ‘노란봉투법’ 심의 중단과 사회적 대화 촉구를 위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에 나선다. 이례적으로 최고령 경제단체장이 법안에 대해 공개 호소하는 것은 그만큼 법안이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노란봉투법은 원청과 하청 근로자 간 교섭을 가능케 하고, 파업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쟁의행위 대상 확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현재 임금 협상 결렬에만 파업이 허용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구조조정, 공장 해외 이전 등을 이유로도 파업이 가능해진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핵심 경영 결정까지 쟁의 대상에 포함돼 산업 현장이 1년 내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로 혼란을 겪고 기업 경쟁력이 심각히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외국계 기업들도 노란봉투법의 부작용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는 “한국의 글로벌 경쟁력과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는 “법안 시행 시 사법 리스크가 커져 유럽 기업들이 시장 철수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손경식 회장은 9일부터 이달에만 8차례에 걸쳐 정부와 여야 정치권을 방문하며 노란봉투법 심의 중단과 사회적 대화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법안이 통과되는 등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자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경영계는 만약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될 경우 6개월 유예 기간 이후 헌법 소원 제기를 포함한 강력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8월 4일 국회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하지 말고 사회적 대화를 충분히 진행하자는 것이 경영계의 공식 입장”이라며 “통과 시 헌법 소원 등 최후 수단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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