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구씨 작가] 어느 날부터 도시락을 싸다니기로 마음먹었다.
한 달 교통비로만 15만 원이 나간다. 한 달의 끝자락쯤 항상 돌아오는 작업실 월세날이 지나면 재료비의 부족으로 작업이 중단되는 날이 생기곤 한다. 그런 날이 모여 모여 뭐라도 아껴보자고 시작한 게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서 돈을 아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어느 날 다이소에서 삼각김밥 틀을 샀고, 곧이어 할인하는 락앤락에서 2단 도시락을 샀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도시락을 싸다닌다. 가끔은 집에 있는 빵이나 간식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하고 애매한 약속시간에 편의점에서 한 끼를 때우기도 하지만 주에 3일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도시락을 싸기 시작한다. 빠르게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서 빠르게 집을 나서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급하지는 않지만 쫓기듯 도시락을 싸며 아침을 시작해보는 것이다.
도시락을 싸는 데에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주메뉴는 삼각 김밥인데, 냉동 밥을 데워서 냉동 치킨에 마요네즈를 버무려 삼각김밥처럼 밥과 밥 사이에 넣는 것이다. 치킨마요 삼각김밥은 내 주요 레시피로 자리 잡았다. 꽤 맛이 좋다. 냉동 치킨은 먹을 만큼 꺼내서(약 4~5조각을 꺼내곤 한다.) 에어프라이기 155도에서 11분 구우면 딱 알맞게 바삭하다. 아주 맛이 좋은 점심 또는 저녁이 건강에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서 사 먹는 편의점 음식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불편한 마음을 쓸어내린다. 다른 메뉴로는 엄마표 피클을 다져 넣은 삼각김밥과 냉장고 여러 야채로 볶음밥을 만들어 틀에 넣는 메뉴가 있었다. 아쉬운 점은 요리를 자주 해 먹지 않던 나의 레시피는 매번 다른 맛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삼각김밥이 만들어지면, 네모로 찢은 알루미늄 포일에 삼각형이 최대한 만져지도록 밥을 싸본다. 작고 모서리가 둥근 삼각형은 싸는 과정에서 쉽게 동그래진다. 조심조심 삼각형을 유지하며 포일로 포장을 한다. 가방에 큰 부피 차지 없이 들어가는 그 두 개의 은색 작은 삼각형은 이동하면서 먹기에도 좋은 사이즈다. 점심 또는 저녁때가 되면 의자를 가까이 대고 앉아서 도시락을 중심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시간이 시작된다. 오늘의 밥은 조금 짠 거 같다느니 느끼하다느니 하며 먹다 보면, 짧은 순간 두 눈이 저절로 창밖으로 향한다. 아주 푸르른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휘청거린다. 참 좋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고대하며 도시락을 싸는 것도 있을 것이다. 은박지에 싸여있는 내 도시락인 삼각김밥 두 개는 아주 조촐한 행복의 상징이 맞다.
돈을 아끼겠다고 시작한 도시락 싸기로 돈이 절약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도시락은 싸다니지만 편의점 신상 음료수는 맛봐야 직성이 풀린다. 계산대 앞의 초콜릿 간식들도 하나는 먹어보고 싶다. 가끔 가는 카페에서 달콤한 케이크도 필수다. 이 소소한 행복들은 도시락을 싸다니면서 아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리고 작은 도시락과 작은 간식들 사이에서 하루에 한 번 이상 행복해지는 어른도 꽤 괜찮은 것 같다.
더운 여름이 지속되는 오늘도 아이스커피가 담긴 텀블러 하나와 시원한 매실이 담긴 텀블러 하나를 가방에 담는다. 거기에 두 개의 삼각김밥을 더하면 그날 하루 작업실로 피서를 가는 것이다. 아주 무거운 가방을 달그락거리며 어깨에 이고 작업실로 나선다. 저녁, 집 가는 길에 무인 편의점에서 들려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행복을 누린다. 어디선가 막은 돈은 어딘가로 새어 나가지만 아주 소소한 소비들로 나는 내일도 비슷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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