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세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형적인 구조다. 세입자가 집값의 70~80%에 달하는 거액을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맡기면서도 이를 보완할 안전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최근 수원에서 잇달아 터진 전세사기 피해는 이러한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수원시정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수원은 전국 전세사기 피해의 7%, 경기도 피해의 31.9%를 차지하는 집중 피해지역이다. 특히 피해자의 75% 이상이 20~30대 청년층이며 피해 주택 대부분은 신축·준신축 다세대주택에 집중돼 있다. 대표적 사례로는 일가족이 800채 넘는 주택을 매입해 760억원의 보증금을 편취한 사건이 있다. 이 과정에서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결탁해 임차인을 속이고 근저당 등 핵심 정보를 숨긴 정황도 드러났다.
공인중개사는 법적으로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받지만 실효성은 낮다. 감독은 자격과 서류를 형식적으로 확인하는 수준에 그치며 임대인과 유착한 중개사를 적발하거나 제재할 실질적 수단은 없다. 전세사기 피해 신고가 급증했음에도 공인중개사에 대한 처분은 대부분 과태료에 그치고 등록 취소나 업무정지 같은 강력한 제재는 드물다.
수원시는 전세피해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법률 상담과 긴급 생계비 지원, 공공임대 지원 등을 시행하며 대응하고 있다. 전세 계약 체크리스트를 배포하며 예방에도 힘쓰지만 현장에서 공인중개사의 설명의무는 여전히 형식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지난해 7월부터 임대인의 체납 여부, 임차인 보호 제도 등을 설명하고 서명을 받는 것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이 또한 형식적인 서명에 그친다면 임차인 피해를 막기에는 부족하다. 금융권 대출처럼 임차인이 위험 요소를 자필로 기재해 명확히 인지하도록 하고 서류를 중개사가 보관하며 법적 책임을 지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제도 개선과 함께 피해자 구제 역시 병행돼야 한다. 상당수 피해자가 여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경제적·심리적 부담에 시달리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가와 지자체가 피해 금액을 우선 지급한 뒤 사기범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전세사기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공공의 무책임이 빚어낸 구조적 문제다.
공인중개사는 누구의 편이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시민의 주거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돼야 한다. 그것이 공인중개사와 수원시 모두에 주어진 의무다. 더 이상 죄 없는 청년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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