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 엄청난 수해가 났다. 자연재해처럼 무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천둥 치고 소나기 퍼붓더니 어느새 폭염이 사납다. 옥탑방 작업실은 하루 종일 가마솥더위다. 작업도 게을러지고 입맛도 없고, 의욕이 없다. 수강생들과 야외 스케치를 했다. 가끔 일상도 환기해야 새로운 의지가 생길 것이다.
남수동은 해마다 찾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다. 나지막한 골목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파스텔처럼 곱게 묻어난다. 흐릿한 방 안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도 걱정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뜨락에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가 소박하게 핀 정겨운 길이 좋다.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풍경과 이야기를 열심히 담았다.
몰입은 꽃 한송이 마음에 피우는 것, 더구나 자신을 넓고 깊게 열어주는 친구 곁이라면 양귀비꽃보다 더 밝을 것이다. 시원한 샘물 같은 남수동의 여름은 올해도 미루나무에 매달린 매미 소리처럼, 어깨동무 줄기를 잇는 나팔꽃처럼 더불어 정답다. 이 세상 태어나 진정한 친구 하나 얻고 싶다. 씨알 함석헌 선생의 글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다시 내어본다. 나의 뿌리요, 혼(魂)이요, 고전인.
“만릿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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