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최근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 숍에서 호랑이와 까치가 함께 그려진 ‘호작도’ 키링을 사려다 결국 발길을 돌려야 했다. 품절이었다. 이유는 더 단순하다. 바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때문이다. 이 작품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혼문’이라는 새로운 K-컬처의 물결을 불러오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헌트릭스’라는 3인조 K-팝 버추얼 걸그룹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동시에, 한국 전통의 무속 신앙을 기반으로 한 퇴마 의식을 통해 악귀를 퇴치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땐 신기하다기보다 낯설었다. 그러나 이질감은 곧 매력으로 바뀌었고, 전통과 현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 콘텐츠는 지금 K-컬처의 ‘새로운 문’을 활짝 열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작품이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미국인 감독(메기 강)과 글로벌 제작진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적 디테일, 서울 도심의 골목길, 포장마차의 떡볶이, 기도하는 무당의 손짓 하나까지 생생하고 정중하게 살아 있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국적인 것을 소재로 삼은’ 콘텐츠가 아니라, 한국 문화를 섬세하게 체화한 결과물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기반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정작 우리는, 한국인인 우리는, 한국 문화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가? 최근 이모티콘과 굿즈 디자인 수업을 하는 나의 학생들, 특히 청소년들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상할 때 전통문양이나 동물상, 민화 요소를 접목하는 것을 오히려 ‘신선하다’고 느낀다. 반면 일부 기성세대는 전통이 촌스럽다거나, 세계시장에 어울리지 않을 거라 판단한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를 뒤집는다. 까치가 복을 부르고, 호랑이가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상징은 오히려 글로벌 팬들에게 신비하고 특별한 문화 자산으로 다가간다. 더욱이 이 애니메이션 속 헌트릭스는 현실 음원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가상의 존재가 현실을 점령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문화의 문턱에 서 있다. K-컬처는 더 이상 단일한 장르나 스타일이 아니다. 그것은 ‘접속과 융합의 감각’을 기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를 가장 세련되게 구현해낸 사례다. 무속과 K-팝, 버추얼과 현실, 한국과 세계가 동시에 뒤섞이고,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그 순간, 콘텐츠는 단순한 스토리를 넘어 ‘경험’이 된다.
문화는 늘 새로운 눈으로 다시 써야 한다. 오래된 것이라도 그 위에 새로운 언어를 덧입히면 전혀 다른 감동을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도 이와 같다. 작가는 ‘문’을 여는 사람이어야 한다. 현실과 감정을 연결하는 문,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문, 그리고 나와 너,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혼문’을 열어야 한다. 지금 K-컬처는 그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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