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한미 관세 협상 마감이 임박한 가운데, 한국의 조선 기술이 미국 조선업 재건의 해법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기술 이전과 인력 양성 등 실질 협력을 전면에 내세워 ‘윈윈 외교’로 관세 장벽 돌파를 노리고 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통상 협상이 8월 1일 관세 부과 시한을 앞두고 막바지 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조선 동맹’이 정부의 핵심 협상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 해상 패권 회복’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조선 산업을 자국 안보와 제조업 부흥의 핵심 축으로 명시한 바 있다. 미국은 해군력 우위에도 불구하고 함정 노후화와 조선 인프라 부족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반면 중국은 정부 주도로 조선 산업 경쟁력을 빠르게 높이며 글로벌 점유율을 확장 중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빠른 선박 건조 역량과 인력 양성 노하우를 적극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에 ‘기술 협력’을 넘어선 ‘기술 동맹’을 제안하는 전략으로 대응 중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연쇄 협상을 갖고 대미 조선 협력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통령실은 “미국이 조선 분야에 높은 관심을 표명했고, 상호 합의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국 측은 한국 조선업계의 현지 투자, 핵심 기술 이전, 인력 양성 지원 등 구체적 협력 방안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선체 일부를 한국에서 모듈화해 미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이 제안됐는데 이는 생산 효율성을 높이면서 미국 내 인프라 부족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민관 공동 대응 체계를 바탕으로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조선 3사의 협력 모델을 토대로 협상 전략을 마련 중이다. 조선 3사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실질 협력을 모색하거나 이미 진행 중이다.
HD현대중공업은 미국 조선업계와의 협력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미국 헌팅턴 잉걸스 조선소와의 MOU를 통해 공동 건조, 기술 협력, 인력 파견 등 실질 협력이 이뤄지고 있으며, 지분 투자 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화오션은 미국 현지에서 이미 실질적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필리조선소를 한화시스템과 공동 인수해 직접 운영 중이며, 스마트 야드 등 첨단 기술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며 “MOU 수준이 아닌 실체 있는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 요청에 따라 협력 자료도 제출했으며, 북미 진출 전략의 일환으로 향후에도 장기적인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미국 측의 구체적인 제안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내부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국익 차원의 협력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발주처 조건 등 사업성 확보가 전제돼야 투자나 공동 건조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히 투자를 한다고 해서 선박 건조가 보장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성이 확보될 수 있는 명확한 개런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과의 조선업계 역량 차이도 한국 측 협상력 제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제시했지만, 조선업 전반보다는 시설 투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반면 한국은 LNG선, 친환경 선박, 스마트 조선소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 조선업 전반의 실질적 파트너로서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한미 간 산업 협력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며 “기술 이전이나 대규모 투자는 민간 기업 결정이 관건인 만큼, 정부 차원의 투자 유인책과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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