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2기 행정부가 다시 들고 나온 관세 카드에 대해 한국은 지금 법과 외교의 경계선에 서 있다. 미 연방대법원이 이를 위헌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현실적으로는 판결보다 전략이 먼저일 수 있다는 냉정한 해석이 나온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과 현실
28일 미 법조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당면한 관세 위협은 미국 무역확장법(Section 232)에 따라 국가안보를 이유로 부과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근거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부터 남용 논란이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0년 미국 국제무역법원(USCIT)은 트럼프 1기 철강 관세 일부를 "임의적이고 일관성 없다"며 위법으로 판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미국 연방대법원이 '헌법상 권한 초과'로 판단해 관세를 무효화할 수 있을지에 이목이 쏠린다.
가능성 자체는 존재한다.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통상 권한 행사에 제동을 건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이 실제 협상 국면에 영향을 줄 만큼 실질적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특히 미 연방대법원은 국가안보와 대통령 권한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해석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현재 대법원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중 세 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인사들이다. 이들 보수 대법관들은 통상 정책과 관련해 행정부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존중하는 판결을 내려온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대법원 구성과 판례 흐름을 감안하면, 관세 조치를 '헌법상 권한 남용'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미 외교·통상 전문가는 "위헌 판단이 나온다면 관세는 무효가 되며 환급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법원이 현직 대통령의 국가안보 조치를 무효화할 가능성은 낮다"며 "한국은 이 가능성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움직이는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을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관세는 먼저 움직인다…산업 구조 흔드는 트럼프
한국 정부가 마주한 현실은 간단치 않다. 한쪽에서는 위헌 판단 가능성에 기대고 싶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시간이 없다. 정책 결정의 현실은 단순하다. 승소 가능성보다, 시차(timing)가 더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약속한 시장 개방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다"며 한국에 △자동차 수입 확대 △쇠고기·쌀 등 민감 농산물 시장 개방 △위치 데이터 등 디지털 규제 완화 △조선·LNG 공동 투자를 일괄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선제적으로 현대차의 '미국 조선산업 부활(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 참여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아직 15% 관세로 타결된 일본·EU에 비해 한국만 유독 최고 세율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 여지는 충분하다.
맥킨지앤드컴퍼니(McKinsey & Company) 가 최근 발표한 글로벌 관세 시나리오에 따르면, 가장 높은 수준의 관세가 지속될 경우, 미국은 2035년 이후 재생에너지 확산이 둔화되고, 유럽연합(EU)은 배터리와 태양광 채택률이 10% 가까이 줄어든다. 이 말은 곧 관세는 단순한 통상 이슈가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는 변수라는 의미다. 법정에서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이, 산업 경쟁력의 지형도는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관세 여파, 거시지표 전반에 파장
블룸버그 산하 경제분석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Bloomberg Economics) 한국이 25% 관세를 피하지 못할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7%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맥킨지 역시 관세 지속이 재생에너지,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위안화 절하, 유가 급등 등 외생 변수와 맞물릴 경우 중기적 경제 불균형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 특히 전체 GDP의 40% 이상이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구조상, ‘관세 한 줄’이 성장률의 방향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고관세→가격경쟁력 약화→수출 감소→수익성 하락→고용·투자 위축→기업 마진 축소→환율 방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관세는 재정, 환율, 고용까지 모두 흔드는 다중 충격이다. 게다가 한국 경제는 GDP의 40% 이상이 수출 의존형 구조이기 때문에, '관세 1%'가 성장률과 통화정책을 동시에 압박하게 된다.
미 재계 관계자는 "법은 천천히 움직이고, 관세는 바로 적용됩니다. 트럼프는 규칙보다 성과를 보는 사람"이라며 "법의 판결을 기다리는 대신, 전략적 포지셔닝을 먼저 선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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