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장관 후보자 일부의 과거 행적이 도덕적으로 문제시됐다.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보좌진에 대한 이른바 ‘갑질’ 의혹을,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각각 받았다.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느냐며 이들의 장관 임명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이들의 저 의혹은 해당 장관직을 맡기에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이 세상에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이 맡으려는 직책이 고위 공직자라면 될 수 있으면 그 ‘이름’에 걸맞은 어느 정도의 높은 도덕성과 뛰어난 업무능력을 겸비한 이를 선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 보면 ‘이름’에 걸맞은 행위를 하며 산다는 것이 비단 고위 공직자들에게만 부여된 책임은 아니다. 공자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고 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에 값하고 사는 일은 이 세상의 평범한 ‘부모’와 ‘자식’ 모두의 책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부모’와 ‘자식’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며 산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은 헛된 이름을 좇는 데 집착하면서도 그것을 ‘이름값’을 하며 사는 것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부모가 자식의 출세를 위해 자신이 가진 힘을 총동원하는 경우다. 이는 참된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결국은 부모답지 못한 행위인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그렇게 성장해 출세한 우리 사회의 자식들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속인들이 부러워할 만한 이름을 얻은 이들 가운데는 물론 괜찮은 품성과 능력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그럭저럭 이름값을 하며 사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특별대우를 받고 자라나 형성된 오만한 특권의식과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열등감으로 자신이 활동하는 공간에서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교육 현장에는 교사나 교수라는 위세에 기대어 수업은 소홀히 하면서 학생들을 고압적으로 대하고 불공정하게 평가하는 선생이 있다. 회사에는 관리자라는 권력에 기대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주시하다가 꼬투리를 잡아 질책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간부도 있다. 그리고 군대에는 우리가 모두 알 듯 한 병사의 순직에 대한 군 간부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군인들도 있다. 모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름값을 전혀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는 이 질문 앞에서 저 이름을 바로잡자는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바로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혁명 사상이다. 중국 고대 하나라와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桀)과 주(紂)는 역사에서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는 이 폭군들을 그 자리에서 몰아낸 것은 ‘임금’이라는 이름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실제 행위를 한 자에게서 그 이름을 박탈한 것이니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맹자의 말씀이 너무 과격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름값을 전혀 못하는 이들에게 평화적 방법으로 시정 요구라도 계속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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