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유럽연합(EU)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사실상 막판 조율 단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실무진부터 정치 지도부까지 양측이 집중적인 협의에 나선 가운데 최종적인 합의 여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로프 길 EU 집행위 무역 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현재 협상은 정치 및 실무 양 측면 모두에서 매우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에는 합의가 확실히 가시권에 들어온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EU가 8월 1일로 예고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시한에 맞춰,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음을 시사한다.
같은 날 중국 베이징을 방문 중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외교적 해법에 집중하고 있다"며 "다만 만족스러운 합의가 도출되지 않으면 보복조치는 언제든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는 협상과 동시에 압박 수단도 병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EU와 미국 간 협상의 주요 골자는 일본과 미국이 최근 체결한 무역 합의 모델을 참고하는 것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미국은 자국 내 일본산 제품에 부과되는 평균 25~28%의 관세율을 약 15%로 낮췄고 일본은 이에 상응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현재 논의 중인 EU-미국 간 합의 역시 이와 유사한 구조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EU산 자동차와 의약품, 농산품 등 민감 품목을 포함한 다수 제품에 대해 15% 전후의 상호관세율을 적용하되 EU 측이 일정 수준의 미국 내 경제 기여(투자, 시장 개방 등)를 보장하는 방식이다.
한 무역 외교 소식통은 "EU가 일본보다 불리한 조건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지만, 협상 지연 시 미국이 보복 조치를 즉시 발동할 수 있어 유럽 측도 최대한 유연한 접근을 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일 예정대로 관세 인상을 단행할 경우, EU는 93억 유로(약 1,150억 달러) 규모의 보복관세 패키지를 즉시 시행할 계획이다.
해당 패키지는 이미 EU 회원국 내 표결을 통해 통과됐으며, 25일 유럽 관보를 통해 세부 내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적용 대상은 미국산 항공기, 전자제품, 농산물 등이며 관세율은 최고 30%까지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EU 측은 "협상이 계속되는 한, 보복관세의 즉각 시행은 유보할 것"이라며 대화를 통한 해결 의지를 반복 강조했다. 실제로 보복조치 시행일은 8월 7일로 명시돼 있어, 트럼프의 결단 여하에 따라 합의와 제재의 기로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EU의 이 같은 태도는 단순한 통상 갈등 대응을 넘어 국제무역 질서에서의 자존과 균형을 확보하려는 포석이라는 평가다.
독일 수출업계는 "한미·미일 무역 합의보다 불리한 조건이 유럽에 적용될 경우 독일 자동차 산업 등 주력 수출 품목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며 조속한 타결을 EU 집행위에 촉구하고 있다.
EU 상공회의소 역시 "이번 협상이 실패로 끝나면 연간 9.5조 달러에 달하는 양측 무역에 심대한 영향이 예상된다"며 "보복관세는 최후의 카드로 남겨야 한다"고 경고했다.
현재 협상의 운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선택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열린 AI 서밋 연설에서 "EU가 미국 기업에 시장을 개방한다면 관세를 낮춰줄 수 있다"고 밝히며 일정 수준의 양보를 조건으로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양측 모두 협상 타결 의지는 분명하지만 일본과 같은 수준의 양보를 EU가 수용할지, 미국이 어느 정도 유연한 조건을 내놓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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