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은 조선 건국 초기부터 16세기까지의 미술을 중심으로, ‘백(白)·묵(墨)·금(金)’이라는 세 가지 색을 통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어떤 미의식을 품고 출발했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 전시다.
그동안 ‘조선 미술’ 하면 흔히 후기에 등장한 민화나 궁중회화, 혹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예술정신을 먼저 떠올리기 쉬웠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조선 ‘전기’의 미술이 가진 정신성과 미학,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탄생하면서 만들어낸 ‘새로운 시선’에 주목하며 그 깊이를 달리한다.
백(白) – 이상을 담은 순백의 그릇
전시를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수백 점에 달하는 백자들이었다.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한 문양에서 시작해, 점차 절제되고 간결해지는 백자의 흐름은 마치 조선이라는 새 나라가 유교적 이상과 절제를 국가 정신으로 삼아가는 과정을 상징하는 듯했다.
나는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작가로서, 이 ‘백’의 세계가 주는 담백함과 고요함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듯하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담아내는 그릇. 그것이 바로 조선의 백자였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무엇을 지우고 비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묵(墨) – 사유의 여백, 정신의 풍경
‘묵’의 공간에서는 조선 사대부들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수묵산수화와 초상화, 그리고 서예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고사관수도’와 같은 작품은 단순한 산수의 묘사가 아닌,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정신적 풍경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금(金) – 찬란함 속에 깃든 신성
마지막으로 마주한 ‘금’의 세계는 불교미술의 정수였다. 금동불상, 건칠불, 각종 불교 장엄구는 조선 초 유교 국가 속에서도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가진 불교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그 표현력은 종교적 신성과 함께 인간의 바람과 염원을 품고 있었다.
작가로서 나 역시 때로는 ‘치유’와 ‘위로’를 주제로 작업을 이어간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보이지 않는 희망을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일. 불교미술이 그러하듯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역할에 대해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전시는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조명하는 ‘대화의 장’이었다. 특히 큐레이터와의 대화를 통해 전시에 담긴 맥락과 의도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시간은 작가로서 이 전시를 더 깊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나는 지금 전통회화 기법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표현과 디지털 매체를 함께 활용하며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그 안에서 늘 ‘지금 이 시대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또 ‘공감과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가 예술을 통해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단지 과거가 아니라 과거 속에 깃든 미래의 가능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가능성은 오늘도 우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것을.
‘새 나라 새 미술’은 조선이라는 시대가 품은 정신과 이상을 색채로 풀어낸 전시였지만, 나에게는 앞으로 어떤 언어와 이미지로 이 시대를 기록하고 그려야 할지를 묻는 전시이기도 했다. 백의 여백, 묵의 사유, 금의 신성함은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안고 나는 다시 나만의 색으로 오늘을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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