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한미 간 고위급 무역협상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본격 재개됐다. 당초 재무부와의 2+2 회담은 일정을 이유로 연기됐지만 산업장관 간 양자협상은 예정대로 진행되며 핵심 현안이 논의 테이블에 오른다.
이번 협상은 특히 최근 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대규모 무역 합의 이후 진행되는 첫 실무 대화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전략적 대응이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일본과의 무역 협상에서 약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유치를 전제로 자동차와 일부 농산물 시장 개방을 조건으로 한 관세 인하 방안을 마련했다. 자동차 관세는 기존 25%에서 15% 수준으로 조정될 예정이며 이는 일본 제조업계에 유리한 수출 환경을 제공할 전망이다.
문제는 자동차와 전자 등 주요 수출 품목에서 한국과 일본이 겹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일본과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조건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미국 시장에서 상대적인 가격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정부의 빠른 협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예정대로 미국 상무부와의 회담에 임했다.
미국 상무부의 하워드 러트닉 장관은 이날 미국 CNBC 인터뷰에서 한국과의 협상 의지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협상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본과의 합의가 먼저 발표된 상황에서 한국의 반응에 대해 다소 직설적인 표현도 내놨다. 러트닉 장관은 "한국이 일본의 협상 결과를 접했을 때 놀라움과 긴장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오늘 한국 측 대표단이 내 사무실에 방문해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발언의 일부 표현은 직역 시 자극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외교적 해석을 감안하면 이는 미국이 한국 측의 빠른 대응을 유도하려는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날 회담에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해 러트닉 장관과 양국 간 통상 현안을 폭넓게 조율했다. 회담에서는 자동차 관세뿐 아니라 배터리·반도체 공급망 협력, 첨단산업 투자 보장, 디지털 통상 규범 등도 주요 의제로 올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불리한 조건을 피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실리 중심 접근에 주력하고 있다"며 "일본과의 합의 수준이 기준선으로 작용하는 만큼, 한국도 자국 산업의 민감성을 반영한 정교한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에서 한일 간 '무역 경쟁' 구도가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균관대 국제통상학과의 A 교수는 "한미 협상이 양자 협상인 만큼, 일본을 의식한 '따라가기식' 협상보다는 한국만의 전략 산업 강점을 기반으로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며 "미국 역시 궁극적으로는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 등 자국 우선주의 흐름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 방식을 다층적으로 조정해 나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회담은 한미 간 통상 협상이 실질적인 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과의 선제 합의로 인해 한국은 보다 빠르고 구체적인 대응을 요구받고 있으며 미국도 이를 인식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이번 주 추가 고위급 실무 협의를 통해 자동차·배터리·바이오 등 주요 수출 산업에 대한 개방 조건을 둘러싸고 미국과 접점을 모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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