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정부의 대미 관세 협상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방미중인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25일(한국시간)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 관세 인하를 공식 요청 했다.
현재 25%로 책정 돼 있는 관세를 얼마나 낮출 수 있느냐가 숙제다.
이에 앞서 일본은 미국과 협상에서 25%였던 관세를 15%까지 끌어 내리는데 성공했다.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농산물과 차 시장을 개방해야 했고 50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도 약속했다.
여기에 조용히 묻혀 넘어간 것이 한 가지 있다. 일본이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는 점이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미국 알래스카 북부 노스슬로프 지역에서 채굴한 천연가스를 남부 항구까지 1,300km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송, 액화해 수출하는 대형 에너지 사업이다.
트럼프 대통령 1기 재임 시절, 이 프로젝트는 '에너지 독립'과 아시아 국가와의 에너지 협력을 위한 전략사업으로 재부각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한·일 정상 회담, 미국 의회 연설 등에서 수차례 알래스카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일본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일본이 참여를 결정하며 화살은 한국을 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미 수차례에 걸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혀 왔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에너지 안보 강화와 동시에 미국이 요구해온 무역 불균형 해소 수단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는 단순한 수입 확대를 넘어 미국과의 통상 관계를 유연하게 조율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시민 단체는 이같은 정부의 움직임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 정부가 눈 앞의 치적을 위해 위험한 좌초 에너지 자산에 투자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훨씬 큰 위험 사업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 이미 한 차례 우리나라에서 거부한 바 있다. 미국의 눈치를 지금보다 더 많이 봐야 했고 환경에 대한 중요성도 언급되지 않던 시기에도 논쟁 수준에서 그쳤다. 그만큼 위험성이 큰 문제다.
알래스카 북부에서 가스를 상업화하려는 시도는 1970년대 파이프라인 구상에서 시작돼 수십 년간 이어졌지만, 높은 난이도와 낮은 경제성으로 번번이 무산돼 왔다.
2010년 알래스카 주정부 산하의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설립된 이후, 2011년 BP-코노코필립스, 2014년 엑손모빌-트랜스캐나다 등이 참여했으나 모두 중단됐다.
BP,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3사는 알래스카 AGDC와 함께 LNG 수출형 프로젝트(AKLNG)를 재추진했지만 2016년경 모두 철수했고 결국 AGDC만이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후 2017년 중국과 62조 원 규모 공동개발 계약이 체결됐지만 2019년 또다시 무산됐다.
이처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지난 수십 년간 민간 기업들이 참여했다가 하나같이 철수하며 번번이 좌초됐다. 장기계약으로 수요처 확보가 필수적인 사업이지만 시장에 경제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높은 개발비용, 낮은 가격 경쟁력, 에너지 전환의 큰 흐름, 정치적 불확실성 등 구조적 리스크가 겹치며 알래스카 LNG 사업은 지속가능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 입증 돼 왔다.
더군다나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청정에너지 전환이 시급한 이 시점에 한국이 핵심 투자자로 참여하게 된다면 막대한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 분명하다.
2023년 공개된 미국 에너지부(DOE)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최종 환경영향평가서 (Final SEIS)에 따르면, 알래스카 북부 슬로프에는 가스 자원이 총 41.1 Tcf(약 9억 3480만 톤) 존재하며, 빠르면 2029년부터 약 30년에 걸쳐 약 27.8 Tcf(6억 3230만 톤)를 각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는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가스 도입량(4411만 톤)의 약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해당 환경영향평가서는 한국을 주요 수출국 중 하나로 설정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LNG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산했다. 이 추정치를 바탕으로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구 협의체(NGFS)가 제시한 연도별 탄소비용 데이터를 적용해 계산하면, CCS(탄소 포집 저장 기술) 적용 여부에 따라 총 탄소비용은 약 3300조 원에서 최대 6300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알래스카 LNG 사업은 단기적으로는 미국과 통상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소재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 문제다. 자칫 현 세대는 물론 다음 세대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업이다.
지금이라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에 대해 다른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통상 협상이 다소 삐걱 거리더라도 다음 세대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선택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고 눈 앞의 관세는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위험성이 너무 큰 사업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수십년 간 자리를 잡지 못한 사업은 그만큼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장의 편의를 위해 쉽게 받아들여도 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의 현명한 접근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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