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한국 금융감독체계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면 개편을 앞둔 가운데, 정치권과 감독기관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금융위는 조직 존치를, 금감원은 감독 기능의 일원화와 독립성을 주장하며 맞서는 가운데, 국회와 학계에선 정책·감독·소비자 보호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단순한 구조 개편이 아니라 기능별 역할을 재정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정기획위원회는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 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고, 금융감독 정책 기능은 독립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로 신설하는 방안을 내부 안건으로 검토 중이다. 아울러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은 금융소비자보호원이라는 별도의 독립 조직으로 분리해 운영하는 ‘3분화’ 모델이 핵심이다.
현행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계는 1998년 외환위기 직후 도입된 이후 25년 넘게 유지돼 왔다. 그러나 금융사고가 반복되고, 권한 집중에 따른 관치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책과 감독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번 3분화 시나리오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와 문제점을 반영한 개편 방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융위·금감원 ‘엇갈린 셈법’과 조직 전망
그러나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이번 개편을 두고 셈법이 크게 엇갈린다. 우선 금융위원회는 조직 존치와 기능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최근 대통령이 부동산 대출 규제와 자영업자 금융 지원 등에서 금융위의 역할을 긍정 평가하며, 금융위 조직 내 주요 인사를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킨 것이 그 신호로 해석된다. 금융위는 ‘정책 주도권’을 유지하며 국제금융 기능 강화까지 모색하는 중이다.
반면 금융감독원은 금융감독위원회라는 독립 감독기구를 중심으로 감독 기능을 확대하고, 금융소비자 보호기능은 별도 독립기구로 분리해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은 조직 확대와 감독 권한 강화를 통해 ‘관치’ 우려를 해소하고 금융감독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금감원 내부에서는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에 대해 강한 반발이 있다. 금융감독과 소비자 보호가 분리될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고 감독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금감원 노조는 이달 들어 두 차례 성명을 발표하며 소비자 보호기구 분리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1500명에 달하는 금감원 직원 명의의 반대 호소문까지 나온 상황이다.
긴급 정책토론회서 쏟아진 쟁점들…“본질은 실효성”
전날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금융감독체계 개편 정책토론회는 이 같은 현안과 갈등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등 범야권 의원 10여명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학계, 전문가, 업계 관계자,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해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은 이 자리에서 “정책과 감독을 나눠야 관치 가능성을 줄이고 실질적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며 분리 개편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전성인 전 홍익대 교수는 “단순히 조직을 나누는 게 아니라,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으로 분산하는 설계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도 “민간 중심의 독립기구가 감독기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 박사는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에 대해 “독립기구 신설이 단절이나 책임 회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책임과 권한이 분명히 정의되지 않으면 조직만 바뀌고 실효성은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안갯속…예산·정치 일정 따라 변동 가능성
정치권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독기능과 소비자보호기구를 분리하는 법안을 제출한 반면,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감독위원회 산하에 금감원과 금소원을 모두 두는 절충안을 내놨다. 반대로 윤준병 의원은 기획재정부의 국제금융 기능을 금융위로 이관하는 금융위 강화 법안을 발의하며, 금융위의 조직 확장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현재의 금융당국 개편 논의는 단순한 외형 정비를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개편은 단순한 행정조직 조정이 아니라, 정무적 고려와 정치적 파장이 함께 작용하는 고차 방정식”이라며 “정부 내 역학 관계뿐 아니라, 내년 총선을 겨냥한 각 당의 포지셔닝도 개편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당국의 개편이 권한 분산을 넘어 실질적 책임 강화와 시장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개편의 의미는 반감될 수 있다”며 “각 기관과 정치권은 권한다툼보다 ‘어떤 구조가 국민과 시장을 위해 더 효과적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정기획위원회는 당초 7월 말까지 최종 개편안 발표를 목표로 했으나, 정치권과 정부 부처 간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8월 이후로 발표가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국회 정무위원회 내부에서도 별도의 개편 법안을 준비 중이며, 일부 여당 의원은 기획재정부 조직 개편과 연계된 금융감독기구 개편을 예산안 처리 이후로 미루자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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