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계열사의 회계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진행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제기된 회계부정과 시세조종 혐의는 지난 17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삼성생명 회계 이슈는 다시 한 번 이 회장에게 '부정회계를 통한 경영권 유지'라는 주홍글씨를 새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논란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고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실질적 영향력이 있음에도 투명성 부족과 회계 왜곡 논란이 제기됐다. 여기에 과거 유배당 계약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지 않은 문제까지 겹치며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에 '논란의 삼성생명' 시리즈를 통해 배경과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삼성생명이 다음달 12일 오전 10시 실적 콘퍼런스콜을 실시한다. 이에 '지분법 회계 적용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험업법상 자회사로 편입된 삼성화재에 대해 그간 '공정가치 금융자산'으로 분류해온 회계처리 방식을 이번 반기 결산부터 '지분법'으로 변경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지분법을 적용할 경우 삼성화재 이익이 삼성생명 재무제표에 반영돼 순이익이 증가한다. 다만 그만큼 유배당 계약자 배당 부채가 증가하고, 보험사의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옛 RBC, 현 K-ICS)에도 부담이 될 수 있어 회사로서는 민감한 사안이다.
2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15.43%를 보유하고 있다. 1분기 말 기준 14.98%에서 올해 4월 삼성화재가 5126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지분율이 15%를 초과하게 됐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자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의 지분을 15%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이에 삼성생명은 금융위원회에 자회사 편입을 신청해 지난 6월 정례회의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를 '기타포괄손익-공정가치 측정 금융자산'으로 분류했다. 이는 관계회사가 아닌 '단순 투자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지배력이나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문제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따르면 지분율이 20% 미만이어도 실질적인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지분법 회계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화재 경영에 개입하지 않는다"며 지분법 적용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회계기준원과 전문가들은 정반대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국회계기준원이 지난 16일 개최한 '보험사 관계사 회계처리 포럼'에서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재무회계 전공 교수 108명 중 82%가 삼성화재에 대해 지분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실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모니모' 플랫폼 공동 운영, 블랙스톤과의 9300억원 규모 공동 펀드 투자, 고위 임원의 교차 발령 등 구조적으로 협력해왔으며 이는 회계기준상 '유의적 영향력' 판단 항목 중 3가지 이상을 충족하는 사례로 해석된다.
회계기준원 측은 삼성화재가 연간 2조원의 순이익을 낼 경우 삼성생명은 지분법 적용을 통해 약 3000억원의 이익을 손익계산서에 반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이익 증가로 끝나지 않는다. 삼성생명이 과거 1990년대까지 판매했던 유배당 보험 상품의 계약자들에게 해당 지분 이익 중 일정 비율을 배당해야 하는 문제가 따라붙는다. 이 배당 의무는 보험부채로 계상돼야 하며 이는 곧 자본여력 감소와 지급여력비율 악화로 이어지게 된다.
삼성생명은 현재 이 부분을 '계약자지분조정'이라는 자본 항목으로 별도 관리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유배당 자산이 매각되지 않는다는 전제를 조건으로 보험부채로 반영하지 않고 자본 항목에 반영하는 '일탈 회계'를 삼성생명을 포함한 6개 생명보험사에 허용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2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실제로 매각하면서 이 전제는 깨졌고, 이에 따라 일탈 회계 적용의 정당성이 상실됐다는 게 회계기준원의 판단이다.
박정혁 한국회계기준원 연구위원은 "타 보험사들의 계약자지분조정 규모가 2000억~3000억원대인데 비해 삼성생명은 9조원이 넘는다"며 "이 정도 규모를 유지하면서 지분법까지 회피한다면 IFRS17을 사실상 적용하지 않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계약자지분조정은 일탈회계가 아니라 업계의 구조적 문제"라며 "IFRS17 원칙으로의 복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도 유사한 비판이 제기된다.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삼성생명의 회계 방식은 계약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신의성실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번 이슈는 금융감독원의 공백기와 맞물려 삼성생명의 '결단'을 더 강조하는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이 회신한 유권해석에 따라 회계기준의 유연성을 인정받았던 삼성생명은 현재 이복현 전 원장의 퇴임으로 인한 판단 공백 속에서 스스로 회계 기준을 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삼성생명은 내달 12일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반기보고서 주요 내용을 공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삼성화재에 대한 회계처리 방식을 기존대로 유지할지, 혹은 지분법으로 전환할지 여부가 공식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연성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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