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T라서 원래 그래 T를 방패가 된 그,
한여름의 열대야만큼이나 끈적하고 불쾌한 말다툼의 한복판. 당신은 일주일간 끙끙 앓던 서운함을 겨우 용기 내어 꺼내놓는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내 생각은 안 하고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어? 난 정말 속상했어.” 당신의 목소리에는 눈물이 맺히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다. 당신은 그가 “미처 생각 못 했어, 미안해”라는, 단 한 마디의 공감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당신의 기대를 산산조각 낸다. 그는 스마트폰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혹은 천장을 보며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어쩌라고. 난 T라서 원래 공감 잘 못해.”
그 순간, 당신의 서운함은 거대한 벽에 부딪힌 계란처럼 허무하게 부서져 내린다. 분노가 치밀다가 이내 깊은 무력감으로 변한다.
이보다 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을까? 그는 자신의 무심함이나 이기심을 탓하는 대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심리 검사의 결과 뒤로 숨어버린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나의 ‘유형(Type)’의 문제라고 선언해버리는 것이다.
MBTI는 2025년 대한민국에서 연애 시장의 새로운 신분증이 되었다. 우리는 네 글자의 코드로 상대를 빠르게 이해하고, 관계의 궁합을 점쳐보기도 한다. 그것은 분명 유용한 도구다.
문제는, 몇몇 사람들이 이 신분증을,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는 ‘면책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휘두른다는 점이다.
“난 T라서”, “원래 E는 그래”, “너는 F니까 그런 거야.” 이 네 글자의 코드는, 관계의 책임을 회피하고 성장을 거부하는 이들을 위한 가장 세련되고 편리한 방패가 되어버렸다.
‘T라서 그래’라는 말에 숨겨진 세 가지 진실
그가 “난 T라서 그래”라고 말할 때, 당신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문장은 그의 성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가 당신과의 대화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나의 ‘전략’이다. 이 네 글자의 방패 뒤에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세 가지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1.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가장 큰 착각은, T(사고형)는 공감 능력이 없고 F(감정형)는 논리력이 없다는 식의 이분법이다. MBTI는 선호 경향을 나타낼 뿐, 능력의 유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T는 문제 해결에 있어 감정보다 논리와 사실을 ‘먼저’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지, 타인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라는 의미가 아니다.
성숙한 T는, 연인의 감정이 격해졌을 때 그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공감’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려 ‘노력’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네가 왜 그렇게까지 서운한지, 솔직히 논리적으로는 바로 이해가 안 가. 하지만 네가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알겠어. 그러니 일단 미안해.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성숙한 태도’다. 하지만 “난 T라서 몰라”라고 말하는 것은, ‘나는 너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태도의 표명이다. 그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책임감과 성숙도의 문제다.
2. 그것은 성장을 거부하는 ‘자기합리화’다
인간은 누구나 미성숙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연애는 그 미성숙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세계를 넓혀가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가 채워주고, 상대의 모난 부분을 내가 감싸 안으며,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간다.
하지만 “난 원래 그래”라는 말은, 이 모든 성장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나는 변할 생각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당하든가, 아니면 떠나라’는 지극히 오만한 선언이다.
이것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고정형 사고방식(Fixed Mindset)’의 전형이다. 자신의 재능이나 성격이 고정불변이라 믿고, 발전을 위한 노력을 무의미하게 여기는 태도.
당신의 연인은 MBTI라는 그럴듯한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미성숙함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 책임을 당신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3. 그것은 관계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어기제’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한 일이다.
약간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난 T라서 그래”라는 방패는 아주 유용하게 작동한다.
이 말은 문제의 원인을 ‘나의 구체적인 행동’에서 ‘나의 추상적이고 바꿀 수 없는 성격’으로 옮겨놓는다.
‘내가 너에게 상처를 줬다’는 불편한 진실을, ‘나의 T라는 성향이 너의 F라는 성향과 충돌했다’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현상으로 둔갑시킨다.
이 교묘한 책임 전가를 통해 그는 사과할 필요도, 자신의 행동을 수정할 필요도 없어진다. 오히려 당신을, T에게 F의 감성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네 글자짜리 방패를 뚫는 대화의 기술
그렇다면 이 견고한 방패를 어떻게 뚫어야 할까? 감정적으로 맞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는 당신의 감정을 ‘F의 비합리적인 히스테리’로 치부해버릴 테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하고 논리적인 창이다.
1. ‘성격’과 ‘행동’을 분리해서 공격하라
그가 “난 T라서 그래”라고 방어할 때, MBTI 자체를 부정하지 마라. 대신, 그의 프레임을 인정해주고, 그 안에서 문제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응, 네가 T인 거 알아. 그리고 T가 감정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존중해. 그런데 내가 지금 말하는 건 너의 MBTI가 아니야. 바로 어제, 네가 했던 ‘그 말’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거야. 너의 성향과 별개로, 그 행동은 나에게 상처를 줬어.”
이렇게 ‘추상적인 성격’과 ‘구체적인 행동’을 분리하면, 그는 더 이상 MBTI 뒤에 숨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이제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해야만 한다.
2. ‘나-전달법(I-Message)’으로 명확한 데이터를 제공하라
F의 언어인 “너무 서운해”는 T에게 해석 불가능한 암호처럼 들릴 수 있다. 그에게는 감정이 아닌, 분석 가능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럴 때 ‘나-전달법’은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나는 ①(상황) 네가 내 이야기는 듣지 않고 휴대폰만 보고 있을 때, ②(감정) 내가 존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고 아주 서운했어. 그래서 ③(요구) 앞으로는 내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5분만이라도 휴대폰을 내려놓고 내 눈을 봐 줬으면 좋겠어.”
이것은 감정적인 비난이 아니라, ‘상황-결과-요청’으로 이어지는 명확한 보고서다. 당신은 그에게 당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가 수행해야 할 명확한 ‘과업’을 전달했다. 성숙한 T라면, 이 명확한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3. 관계의 ‘상호성’이라는 원칙을 상기시켜라
최후의 수단은 관계의 본질을 건드리는 것이다.
“나는 너의 T적인 성향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네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도, 가끔은 내 감정을 살피지 못하는 것도, 이제는 ‘아, T라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려고 해. 이건 널 위한 나의 노력이이야. 그런 것처럼, 너도 나의 F적인 성향을 조금만 존중해주려는 노력을 해줄 수는 없을까? 나에게 ‘공감’은, 너에게 ‘논리’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야.”
이것은 관계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인내가 아니라, 두 사람의 ‘상호적인 노력’ 위에 세워진다는 대원칙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 제안마저 거부한다면,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MBTI는 관계의 지도가 될 순 있어도, 행복의 보증수표가 될 순 없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은 ISTJ, ENTP라는 네 글자의 코드가 아니라, 그 코드를 가진 채 당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세계를 넓히려 노력하는 한 명의 인간이어야 한다.
그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네 글자의 알리바이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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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출간 안내
당신의 이야기는 ‘운명’이 아닌, ‘용기’가 될 거예요.나만 아는 상담소 첫 번째 책, 『운명이라는 착각』 출간
관계 속에서 길을 잃고,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처럼 느껴졌나요?
그 아픔과 혼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관계 전문 심리 상담소, 나만 아는 상담소입니다.
저희는 수많은 마음의 상처 속에서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정성껏 모아 한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정서 학대, 가스라이팅, 교제 폭력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그 고통의 실체를 당신이 쉽게 이해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요.
오랜 기다림 끝에, 그 마음이 드디어 ‘운명이라는 착각’ 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 책은 당신을 탓하던 세상의 목소리 속에서 당신의 편이 되어줄 다정한 친구이자, 아픈 관계를 끊어낼 용기를 주는 단단한 지침서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그 착각의 안개를 걷고, 당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진정한 길을 찾아 나설 시간입니다. 그 길의 시작에 저희의 책이 작은 등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해주세요.
“이제, 잠시 눈을 감고 편안하게, 깊은숨을 한 번 크게 내쉬어 보자.
– 운명이라는 착각: 상처받지 않는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법, 프롤로그 발췌 –
그리고 천천히 아팠던 이야기를 마주할 준비를 해 보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어둡고 긴 혼란의 터널 속에서
마침내 한 줄기 빛처럼 이 책을 발견했다.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 다.
그것은 바로 삶이 정체된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의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신호이다.당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잃어버렸던 자신을 되찾아가는 치유와 성장의 과정을 이제, 바로 지금,
함 께 시작해 보자.삶은 그 누구도 아닌, 온전히 자신의 것이며,
‘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충분히 사랑받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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