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선선한 여름 산기슭. 노란 꽃잎 사이로 아주 작고 가느다란 수술 몇 가닥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길어야 3cm도 되지 않는 이 붉은 실타래 같은 부분을 하나하나 손으로 따 바람과 햇살이 잘 드는 마루에 펴놓고 말리면 붉은빛은 더 짙어진다. 이 말린 수술 몇 가닥이 티스푼 하나 분량도 안 되지만, 그 가격은 1만 원이 훌쩍 넘는다.
바로 ‘사프란’이다. 해외에선 ‘붉은 금’이라 불릴 만큼 고가로 거래되는 식재료지만,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식물에서 얻는 국산 사프란이 존재한다. 주로 금잔화나 붓꽃과 식물에서 채취되며 순도와 색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향신료·차·약용 등 용도는 같다.
꽃 수술만 따서 말리는 수고… 왜 이렇게 비쌀까
사프란의 원재료는 꽃이 아니라 꽃의 수술이다. 정식 사프란은 크로커스(Crocus sativus)라는 붓꽃과 식물에서 얻는다. 보통 1송이 꽃에서 3개의 수술이 나오고, 수확은 모두 손으로 해야 한다. 1g을 얻기 위해서는 약 150송이의 꽃이 필요하다. 대량 수확도 어렵고 가공도 힘들다.
국내에선 이란·스페인산 건조 사프란이 수입되지만, 제주·지리산·경남 하동 등지에서는 금잔화나 금영화, 붓꽃 종류에서 비슷한 성분을 지닌 수술을 따서 국산 ‘사프란 차’로 만든다.
말린 수술은 가늘고 붉으며 특유의 진한 향을 낸다. 물에 우려내면 노란색을 띠며 특유의 쌉쌀한 맛이 도드라진다. 티백보다 꽃 수술 자체를 그대로 말린 형태가 고가로 거래되며, 꽃이 피는 시기와 재배 환경에 따라 품질과 향이 달라진다.
약성부터 향신료까지… 꽃 속의 '황금 재료'
사프란은 수천 년 전부터 페르시아·인도 지역에서는 생리통, 소화불량, 기침, 피부염 등에 약재로 사용해 왔다. 현대 한의학에서도 진정·항염·혈액순환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고 본다.
실제 사프란에 함유된 크로신(crocin)과 사프라날(safranal)은 신경 안정과 항산화 작용에 관여하는 성분으로 알려져 있다. 수면의 질을 높이거나, 갱년기 불면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다.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뒤 사프란 차를 한 잔 마시면 더부룩함이 가시는 경우도 있다.
향신료로는 지중해 요리와 중동식 쌀 요리에 주로 사용된다. 샤프란 리소토, 파에야, 부야베스 등에서 노란색을 내는 재료가 바로 이 사프란이다. 열을 가하면 향이 강해지고, 풍미가 배가 된다. 다만 농도가 너무 진하면 쓴맛이 돌 수 있어 소량만 사한다.
국산 사프란, 금잔화·금영화에서도 얻는다
전통적으로 ‘사프란’이라 부르는 붓꽃과 크로커스는 우리나라 자연환경에 잘 맞지 않는다. 대신 전남 고흥이나 경남 하동 등 일부 농가에서는 금잔화(칼렌듈라)를 재배해 사프란 대용 식재료로 이용한다. 꽃잎이 크고 수술이 선명해 채취와 건조가 비교적 수월하다.
금잔화의 수술은 사프란만큼 강한 색은 아니지만, 유사한 향과 성분을 가지고 있어 국내에서는 ‘국산 사프란’ 또는 ‘대체 사프란’으로 불린다. 이밖에 금영화나 금패랭이, 황화코스모스 같은 꽃들도 여름철 잠시 채취 대상이 된다. 꽃 수술만 따는 작업은 모두 손으로 해야 하며, 채취 후 1~2일 내 건조하지 않으면 성분이 산화된다.
주로 수작업으로 진행되다 보니 대량 생산이 어렵고, 기계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유통량 자체가 적어지면서 희소성도 자연히 올라간다. 일부 농가에서는 체험 프로그램 형태로 관광객에게 사프란 채취를 유도하며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우도 있다.
물 1리터에 5가닥만 넣어도 충분하다
말린 사프란은 공기와 수분에 매우 민감하다. 햇볕에 말린 후에는 밀폐 용기에 담아 냉암소에서 보관해야 향이 날아가지 않는다. 유통기한은 짧아도 1년, 길게는 2년 이상 보존된다. 진공으로 포장된 제품은 냉장 보관을 하면 2년까지 향을 유지할 수 있다.
차로 마실 때는 뜨거운 물 1리터 기준으로 사프란 가닥 5~6개만 넣으면 충분하다. 우려낸 물은 맑은 노란색이며, 특유의 쌉쌀한 향이 퍼진다. 취향에 따라 꿀이나 레몬을 섞어 마시기도 한다. 과하게 넣으면 향이 강하고 떫은맛이 올라올 수 있다.
아이와 임산부는 섭취를 피하거나 의사와 상의 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체질에 따라 구토나 어지러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사프란을 식품 원료로 인정하고 있으나, 1일 섭취량을 1g 이하로 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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