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담당 직원이 투자자 성향을 대신 작성해 고객에게 피해를 입혔다. 문제는 이의를 제기한 고객에게 자서 여부를 직접 증명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은 은행이 이익을 위해 고객을 속인 부적절한 사례로 투자자 성향 대필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불완전판매 문제로 이후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생기기도 했다.
23일 더리브스 취재에 따르면 우리은행 전 부지점장 B씨는 근무 당시 관행대로 고객 A씨의 투자자 성향을 임의로 작성했다고 인정했으나 우리은행은 자서 여부를 고객이 증명해야 한다고 대응했다.
직원이 고객 투자자 성향 대필하는 문화?
A씨는 B씨로부터 후순위 상품임을 안내받지 못하고 지난 2018년과 2019년 각각 펀드상품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게 됐다. A씨가 가입한 해외 부동산펀드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04호(파생형)’와 ‘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다.
투자자정보 확인서를 보면서 A씨는 투자자 성향분석에 대한 설문 항목을 본인이 작성하지 않은 점을 지난달 발견했다. 문제는 A씨의 투자경험이 공격투자형, 투자 상품에 대한 지식의 경우 매우 높은 수준으로 체크 돼 있었다는 점이다. 투자 시 감수할 수 있는 손실 수준에 대해서도 ‘기대수익이 높다면 위험이 높아도 상관하지 않는다’에 표시돼 있었다.
B씨는 A씨 대신 투자자 성향을 임의로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펀드 가입 당시의 경우 직원이 임의 작성하는 게 관행이었기에 괜찮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자신은 투자 성향이) 안전추구형이며 투자원금 손실이 상관없다고 이야기한 적이 전혀 없다”며 “판매자가 본 펀드상품에 적합한 고객성향에 맞춰서 가입시켰다”고 강조했다.
더리브스가 확보한 녹취에 따르면 B씨는 A씨와 통화에서 “그때는 직원들이 (고객 투자자 성향을) 대신 써도 될 때였다”며 “편하게 임의대로 1등급이 나오게 해야 그 상품이 팔리기 때문”고 말했다.
이어 “귀찮아서 다 그렇게(직원이 임의 작성) 했다”고 덧붙였다.
자서 여부, 고객이 증명하라는 우리은행
은행 직원이 관행으로 고객 대신 투자 성향 등을 기재해 온 건 사실이다. 서류가 작성돼야 상품 가입이 가능한 만큼 직원이 편의를 위해 고객을 돕는 차원에서 대리 작성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B씨가 펀드 상품에 대한 원금 손실 가능성 등을 A씨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실제와 다른 투자 성향에 대해 펀드 가입 서명만 받은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은 고객이 법원을 통해 자서가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A 씨는 지난달 B 씨가 투자자 성향을 대필한 점을 시인한 사실 등을 토대로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우리은행은 답변서에서 “서류의 체크표시 등에 대해서는 당행에서 자서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며 “판매직원의 녹취내용을 근거로 불완전판매 여부 또는 계약취소 등에 대해 확정하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이후 A 씨는 답변서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우리은행 민원 담당자와 통화했다. 다만 돌아온 건 고객 명의로 상품이 가입된 서류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고객이 서명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답변뿐이었다.
우리은행 민원 담당자는 A 씨와 통화에서 투자자 성향분석 항목에 대해 “(고객) 서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법원에서 판정을 받은 거면 인정한다”고 말했다.
직원 임의 작성, 정말 은행 책임 없나
판매를 담당했던 전 직원이 대필한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우리은행은 고객 스스로가 입증하라고 응수하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애초 직원이 고객 대신 투자 성향 등을 임의로 기재하는 관행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주체는 은행이 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고객의 투자 성향 등을 임의로 기재하며 발생하는 불완전판매 심각성은 금감원도 지적해 왔다. 금감원은 지난 2019년 10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DLS) 관련 중간 검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투자자 성향을 조작한 사례를 다수 공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필 문화는 지난 2021년부터 금소법이 시행돼서야 규제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절차를 통해 세워진 법정 대리인에게만 대필 자격이 주어지며 직원은 대필 자체가 불가하게 됐다. 금소법이 시행된 후 관행으로 행해졌던 대필 문화는 불완전판매 소지가 충분한데도 우리은행은 이를 모른 척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B씨가 고맙게도 임의로 작성한 게 맞다고 인정을 해줬는데도 이 정도인데 다른 피해자들은 이런 녹취마저도 없을 것”이라며 “은행이 임의로 작성한 것을 고객이 증명해야 하는 게 참 무책임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고객의 투자자 성향분석을 판매자가 가입자 모르게 임의로 작성하는 건 조작”이라며 “우리은행이 손실 위험을 확인하는 항목 서명은 제 자서이고 직원이 대필한 곳은 자서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게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더리브스와 통화에서 “(직원이 고객 투자정보를 임의 작성하는 건) 한창 불완전판매가 이슈되기 전에 투자 상품을 추천하면서 있었던 일이다”라며 “고객 편의를 위해서였다고 해도 실질적으로는 제도 안에서 한 게 아니다 보니 불완전판매 리스크가 생겼고 금소법이 마련됐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더리브스 질의에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며 “추가적으로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언급했다.
양하영 기자 hyy@tleav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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