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김창수 기자 | 미국 정부가 중국산 흑연에 대해 최대 93.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 판정을 내린 가운데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에 후폭풍이 거세다. 이를 두고 중국산 천연 흑연에 의존해 온 국내 배터리업계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중국 견제 분위기 속 반사이익을 노려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최근 중국산 배터리용 음극재(흑연)에 대해 93.5%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이는 확정까지 유예 기간을 거치지만 사실상 중국산 흑연의 미국 시장 퇴출 선언으로 평가된다. 반덤핑 관세가 추가되면 중국산 흑연에 실질적으로 부과되는 총 관세율은 160%에 달하게 된다. 최종 결정은 오는 12월 5일까지 내려질 예정이다.
흑연은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의 핵심 원료로 꼽힌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통상 흑연이 배터리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 미만이다. 그러나 전체 배터리 비용 자체가 수천달러에 육박하므로 흑연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를 경우 차량 한 대당 1000달러(약 139만원) 이상이 추가로 들 수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국내 배터리사들의 흑연 수입 중국 의존도는 90%를 넘는다. 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 등 국내 소재업체들도 대부분 중국산 천연 흑연을 정제해 사용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당장 공급 비용 증가 및 원재료 수급 불확실성 우려가 예상된다.
업계는 이번 관세 정책이 가져올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앞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통해 북미 내 배터리 소재 및 부품 공급망 자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중국산 흑연 ‘관세 폭탄’ 부과도 그 일환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중국 외 타 지역에 공급망을 이미 구축했거나 북미 내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장기적 수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오는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소재 중 80%를 자국이나 우방국에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현재 흑연 정제 시설이나 수급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의 북미 진출 및 소재 국산화가 빨라질 가능성에 무게가 쏠린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캐나다, 포스코퓨처엠은 인도네시아·미국에 음극재 사업 거점을 확보 중이다.
다만 IRA 세액공제 요건 충족을 위해선 미국 내 생산이 필수인 만큼 단순히 비(非)중국산 흑연을 수입한다고 해 수혜로 이어지긴 어렵다. 업계는 국내 흑연 정제 기술력 확보, 원료 수급 다변화 및 인조흑연 생산 확대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자들은 미국 정부 조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의 반덤핑 예비판정 이후 중국 외 흑연 생산기업들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고 전하며 공급망 다변화와 전략적 투자 확대 가능성을 긍정 평가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K-배터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단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미국 내에서 자체 흑연 정제 인프라가 완비되기 전까지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미국산’ 요건 충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IRA 보조금 요건 충족을 위한 파트너사와의 ‘간접 합작’이 불가피해졌단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반덤핑 관세는 단순한 무역 조치가 아닌 미국의 전략적 공급망 재편 신호”라며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를 넘어 중장기적으로는 북미 현지 소재 공장 및 인프라 구축에 더욱 신경써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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