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 한류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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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 한류의 끝은

비즈니스플러스 2025-07-23 09:50: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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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당신이 한국 드라마 '별그대' 주인공 도민준이라면 천송이와 마지막 3개월을 보내고 죽어 그녀에게 고통을 줄 것인가, 그녀에게 고통을 주느니 차라리 원래 별로 돌아갈 것인가. 8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2014년 전지현, 김수현 주연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을 때 홍콩의 한 중학교 작문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지금은 '한한령' 발동이 수년간 지속이 되어 상상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같은해 한국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딸과 함께 시(진핑) 주석의 젊은 사진을 보며 '별 그대' 주인공 도민준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 사실이 국내 언론에 보도되고 이게 다시 중국 언론에 보도되어 당시 중국에 퍼진 한류의 영향력이 새삼 돋보이기도 했다. 

2017년 한국의 사드(THAAD) 배치 결정으로 중국이 한국 문화·상품·관광을 제한하는 '한한령'을 발동하자 국내에서는 "이제 한류는 끝난 것 아니냐", "거대 중국시장을 잃고 앞으로 한국 드라마, 음악 등이 어떻게 돈을 벌 것이냐" 등등의 비관론이 팽배했는데 이제는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한류'는 무한확장되고 있어 중국의 서슬퍼런 '한한령'이 무색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소니사의 미국 현지법인이 만든 애니메이션 '케이(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넷필릭스를 통해 스트리밍되면서 말 그대로 전 세계적인 광풍을 몰고와 K팝 노래들이 전 세계 주요 음원 차트를 장악하는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영화 제작사는 소니이지만 영화 속 노래와 성우들은 트와이스, 안효섭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연예인들이고 작곡·작사자들도 대부분 K팝 주역들이다.   

"Pray for me now. I'll be your idol. Keeping you in check, keeping you obsessed."
(나를 위해 기도하라. 나는 당신의 아이돌. 당신의 마음을 붙잡고 나를 잊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영화 속 남성 악마그룹인 '사자 보이즈'가 부르는 '유어 아이돌'의 가사인데 현실세계가 노래 가사처럼 되고 있는 것이다. 그룹이름 '사자'는 죽은 자를 뜻하는 사자(死者)와 맹수의 제왕 사자(獅子)를 모두 의미하는 중의적인 이름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 사진=넷플릭스

◇한류 콘텐츠의 힘으로 버티는 넷플릭스, 서구사회 깊숙이 파고드는 K팝

'케데헌'의 스토리는 아주 단순하다. K팝 슈퍼스타 루미, 미라, 조이로 이뤄진 걸그룹 '헌트릭스'는 아주 옛날 마을을 지키던 무당 시절부터 전통을 이어받아 악마로부터 인간들을 보호했는데 이번에는 악령들로 이뤄진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가 등장해 이들이 노래로 한판 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영화 속 인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은 21일(현지시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4위에 올랐는데 이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겨울왕국' OST '렛 잇 고'의 최고 성적이었던 5위를 뛰어넘은 기록이고 1위 등극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골든'은 물론이고 영화 속 노래들이 모두 전 세계 음악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영화도 공개되자 마자 넷플릭스 영화부문 글로벌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올드가드2', '브릭' 등 후속 히트작들이 등장해도 순위가 빠르게 내려가지 않고 2위 자리를 지키다 지난 20일에는 다시 글로벌 순위 1위로 튀어 올라 장기 흥행에 돌입한 상태이다.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는 동남아에서 먼저 1위를 차지하다 서구 쪽으로 조금씩 퍼지는 스타일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전 유럽과 미국에서 '케데헌'은 부동의 1위 자리를 지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케데헌'이 다시 1위에 오른 나라들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지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 국가들은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핀란드. 체코 등 유럽 국가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K팝이 백인 문화권을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케데헌'이 이렇게 서구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OST를 영어·한국어 버전은 물론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여러 언어권으로 각각 녹음한 것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어 OST를 정식으로 출시하라는 요구도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시청자들 사이에 영어·한국어 노래 버전이 가장 좋다는 평가가 많고 시청시간도 압도적이다.      

'케데헌' 인기가 높아지면서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영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더피), 까치(수씨) 캐릭터 모티브의 전통 민화가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오르골, 벙거지 모자, 에어팟 케이스 등의 해외 직구가 급증하고 서울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이 영화 속 무대인 '북촌 한옥마을'이나 '남산타워'를 찾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극중에서 주인공들이 '라멘'이 아니라 '라면'으로 발음하면서 컵라면을 바쁘게 먹고 김밥, 새우깡 등을 거침없이 먹어대는 모습이 나와 관련 업체들이 뜻밖의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미국 NBC는 "애니메이터와 영화 제작진이 K팝 업계의 도움을 받아 탄생시킨 가상 그룹 사자 보이즈와 헌트릭스는 이미 글로벌 슈퍼스타가 됐다"고 진단했다. 영국 BBC는 사자 보이즈의 스포티파이 미국 차트 1위 소식을 전하며 "블랙핑크와 함께 작업해온 테디, BTS와 협업한 린드그렌 등 정상급 프로듀서들이 제작에 참여했기에 앨범의 성공이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넷플릭스가 발표한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 매출은 작년 동기보다 15.9% 늘어난 110억7900만달러(약 15조4400억원), 주당순이익(EPS)은 7.19달러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의 이같은 실적을 가능하게 만든 데는 한류 콘텐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은 넷플릭스 스스로가 밝히고 있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오징어게임 시즌3'는 상반기 조사 기간인 같은 달 30일 기준으로 약 7200만회의 시청수를 기록했고 학교를 소재로 한 '약한영웅 클래스 1·2'는 총 4200만회, 아이유와 박보검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드어준 '폭싹 속았수다'는 3500만회, 메디컬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는 3400만회를 기록하는 등 흥행순위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한국 드라마들이 넷플릭스의 상반기 실적 향상을 견인한 것이다. 

PWC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E&M(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산업시장은 2023년 2조8000억달러 규모에서 2028년에는 3조40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콘텐츠 산업 수출을 50조원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제 꿈이 현실이 되고 있는 현장을 우리 모두 지켜보게 된 것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에서 발간하는 '지구촌 한류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한류 팬은 2억2500만명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2012년 926만명에서 24배 증가한 수치이다. 하지만 이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으로 한류 팬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때마침 블랙핑크의 신곡 '뛰어'(JUMP)가 지난 17일 기준,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의 '위클리 톱 송 글로벌'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월드투어 '데드라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이어 시카고에서 전석매진이라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보이 그룹 스트레이키즈(Stray Kids) 역시 월드투어를 진행 중인데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형 스타디움 단독 공연에 수만명이 운집하는 대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 한류 팬 추이(한류 관련 동호회, 동호회원 수) / 자료=한국국제교류재단(KF)
전 세계 한류 팬 추이(한류 관련 동호회, 동호회원 수) / 자료=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n Wave' 아닌 'Hallyu'가 통용되는 단계에 이른 '한류의 신시대'가 의미하는 미래 

"한국 문화는 지난 30년 동안 기술을 활용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뛰어난 통신 기술을 활용해 전 세계로 문화를 전파했다. 이제 전 세계가 한국 문화에 궁금증을 보이고 관심을 갖고 있다. K팝과 K드라마에는 한국 고유의 특성과 가치가 녹아 있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이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어본다면 '지금하고 있는 것을 계속하면 된다'고 얘기할 것이다."

2018년 자신의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앞으로 세계에서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해서 유명해진 샘 리처드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여러 차례 강의를 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한류'를 설명하기 위해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서 우리 조상들이 가무(歌舞)를 특히 즐겼다는 대목에서 그 근거를 찾기도 했다.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이 고려시대의 풍속을 다룬 '고려도경'이라는 책에서 "일부 고려인들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는지, 배마다 10여인이 밤에는 갑판을 울리고 삿대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서로 화답한다"고 기록한 대목도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 귀에는 아직 생소하지만 '코리아부'(Koreaboo)라는 말이 있다.

​나무위키를 보면 '코리아부'는 서구권에서 한국인이 아님에도 지나칠 정도로 한국(인)을 숭배하면서, 어설프게 한국인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혹은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사람이 스스로 '코리아부'라고 자칭하기도 한다고 한다. 

'케데헌'에서 '라멘' 대신 '라면'이라고 분명하게 발음하듯이 이제 한류를 다루는 외국 논문이나 언론에서는 '한류'라는 단어를 영어식 표현인 'Korean Wave' 대신에 아예 한국어 발음 그대로 'Hallyu'라고  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0일 미국현대언어협회(MLA) 보고서를 인용해 2013년에 비해 2021년에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이 57%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클레이턴 두베 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미·중연구소 소장의 말을 인용해 "현재 가장 인기가 많은 동아시아 언어는 한국어이고 이는 100% K팝이 주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코리아부'가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언론에서 '한류'나 'K팝'을 분석하는 기사를 쓸 때 아주 쉽게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부의 계획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라는 식의 보도를 많이 하지만 아무래도 피상적인 분석일 수밖에 없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영화 '쥬라기공원' 1년 흥행 수입이 우리나라 자동차 150만대 수출 수익과 같다"는 말을 참 많이 반복했었다. 그만큼 문화산업 진흥에 대한 집념이 강했던 것은 분명하고 관련해서 각종 정책들이 추진된 것이 한국 문화산업 진흥에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케데헌'은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영화 제작에 대거 참여한 것은 맞지만 한국 정부의 지원이나 한국 자본은 0.1%도 기여하지 않았다. 

한국은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연예인들을 '딴따라'로 부르면서 폄하해왔다. 한국영화를 즐기는 관객들마저 비웃어 그들에게 '고무신 관객'이라는 이상한 별명을 붙였다. 하지만 이제 정유경 신세계 회장 딸 문서윤이 '애니'라는 이름으로 5인조 혼성그룹 올데이 프로젝트(ALLDAY PROJECT)에서 과감하게 '딴따라'로 활동하는 등 세상이 바뀌었다.

무한질주하는 '한류'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아니면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일까.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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