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은 논쟁적이면서도 중요한 복지 정책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특히 경기도는 이 두 정책을 실제로 도입·운영한 전국 유일의 광역자치단체로 정책 실험의 선두에 서 있다.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 시절의 청년기본소득, 농촌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에 이어 김동연 현 지사는 예술인, 장애인, 농어민, 체육인, 기후행동 참여자, 돌봄 종사자 등을 대상으로 기회소득 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보통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개별로, 정기적으로, 그리고 현금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한다”는 다섯 가지 원칙(보편성·무조건성·개별성·정기성·현금성)을 전제로 한다. 최근엔 생계를 충분히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을 준다는 충분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부각되기도 한다. 그 개념적 범주가 어떻든 경기도에서 실행한 청년기본소득이나 농촌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은 이 원칙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다.
첫째, 특정 집단(청년, 농민 등)에만 지급되는 ‘범주형 기본소득’이다. 둘째, 예를 들어 농민기본소득에서 보듯이 대상 선정에 일정한 소득자격 기준이 존재한다. 셋째, 현금 대신 사용에 제약이 따르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로 지급한다. 결국 경기도의 기본소득 정책은 이론적 기본소득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단, 정책 실험의 의미를 지닌 ‘부분적 제도화’로 평가해 줄 수는 있다.
한편 김동연 도정이 도입한 기회소득은 기본소득과는 철학적 기반이 다르다. 경기도는 기회소득을 단지 저소득층 지원 정책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 활동에 대해 사회가 책임지고 정당한 보상을 제공하는 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예술인, 장애인, 농어민, 체육인, 돌봄노동자, 기후행동 실천자 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그 노동과 참여가 시장에서 과소평가되거나 무보수에 가까운 형태로 방치돼 왔다고 보는 것이다. 기회소득은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인 기여에 대해 사회가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하는 실험이다.
이들 정책은 보통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실제 사회보장심의를 거쳐 채택된 사회보장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존 복지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제도적 상상력과 사회적 실험의 장을 여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 정책은 복지정책을 넘어 미래 사회를 위한 제도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기본소득이 ‘존엄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이라면 기회소득은 ‘가치를 창출하는 삶에 대한 존중’이다. 둘은 상호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다른 차원에서 개인의 삶을 지원하는 두 개의 축이다. 그런 만큼 비록 이 양 제도가 현재 병렬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오히려 전략적 통합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통합적 정책 설계를 통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일정한 기본소득(부분적이라도)을 지급한 후 사회적 활동에 따라 추가적인 기회소득을 부여하는 방식은 복지의 보편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구조다. 또 양 제도 모두 지역사회 기반의 실천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공동체 회복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이 지역 안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며 보상을 받고 동시에 안정적인 기본소득을 통해 삶의 불안을 줄일 수 있다면 이는 ‘참여 기반 지역 순환경제’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실제 경기도 농어민기회소득은 그 뚜렷한 흔적을 보여준다.
경기도가 진행해 온 기본소득과 기회소득 정책은 기존 제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확장해 왔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정책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이제 과제는 명확하다. 이 두 제도의 실험을 계승하되 더욱 정교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제도화하는 것이다. 기본소득과 기회소득이 따로 가지 않고 함께 설계되고 운영된다면 우리는 ‘함께 사는 사회’라는 더 근본적인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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