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이재명 정부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재계 총수들과의 연쇄 회동을 통해 ‘정부-기업 원팀 정신’을 강조하며 친기업 행보를 보이면서도, 국회에서 여당을 중심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이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재계는 앞에서는 통상·투자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스킨십을 넓히는 가운데 제도적으로는 기업 부담을 키우는 ‘화전양면 전술’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재계 총수들과 회동하며 기업 친화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통상 압박 속에 대미 투자 현황과 산업계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며 ‘원팀’ 기조를 강조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14일 정의선 회장, 15일 구광모 회장을 서울 한남동 관저로 초청해 잇따라 만찬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만남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산 자동차·부품·철강 등에 최대 50%의 관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마련된 것으로, 이 대통령은 두 총수로부터 대미 투자와 통상환경 변화에 따른 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들었다. 대통령실은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으로 재계와 자주 소통할 것”이라며 친기업 메시지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재계와의 광폭 행보는 취임 초기부터 지속됐다. 지난 6월 13일에는 취임 9일 만에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 6단체장과의 첫 간담회를 열었고, 7월에도 최태원 SK회장과 AI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 만나 교류를 이어갔다. 기업 출신 인사를 내각에 대거 기용한 점도 재계와의 신뢰 구축에 방점을 찍은 행보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같은 ‘친기업’ 행보와는 달리 입법 및 제도 영역에서는 재계가 우려하는 법안들이 여당을 중심으로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8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본격적인 심사에 착수했다. 해당 법안은 원청-하청 교섭의무 확대 및 파업 손해배상 제한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재계는 이 법이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산업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재명 정부는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와 전자주총 의무화, 독립이사 요건 강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특히 ‘3%룰’로 알려진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조항은 공포 1년 후 시행되며,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은 현재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또 다른 상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자사주는 재계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돼 왔지만, 이를 3년 이내 소각하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 포함되며 재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안에서는 소각 기한을 6개월~1년으로 단축하는 법안까지 나와 업계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재계는 잇따른 상법 개정이 단기적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장기적 기업 경쟁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대체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사주 소각만 강제하면, 경영권 방어는 물론 인수합병(M&A)과 AI·신산업 투자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기업들은 자사주를 신사업 투자재원 확보, 전략적 제휴, 경영권 방어 등에 유연하게 활용해왔다. 그런데 ‘소각 의무화’가 추진되면 시장에 자사주 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주가 급락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정부가 앞에서는 기업과의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여당은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자 대통령과 정부의 진정성과 일관성에 대한 의구심도 깊어지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원팀을 외치며 기업과 동행하겠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영 자율성과 권한을 제약하는 법을 추진한다면 재계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고 불신만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재계는 대통령의 친기업 ‘스킨십’ 보다 법안들이 현실로 다가오는 만큼 정부가 사실상 반기업 기조를 띄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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