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앞세운 생산 혁신의 물결이 전 산업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도 스마트조선소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노동집약 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조선업이 이제 첨단 기술을 품은 미래형 제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HD현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는 각사 고유의 AI·로봇 솔루션을 앞세워 생산성과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서고 있다.
22일 산업 전문 분석기관 리서치 네스터에 따르면, 디지털 조선소 시장 규모는 2025년 33억 달러(약 4조5700억원)로 추산되며 2037년 말에는 139억 달러(19조2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25년부터 203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은 15.4%로 집계됐다. 업계는 디지털 전환이 생산성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필수 전략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디지털 전환의 필요성은 기술 발전뿐 아니라 경제 환경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24년 최종 수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대비 3% 이상 상승했다. 이는 자재 조달과 설비 운영 비용의 증가로 이어져 조선소들의 이익률과 가격 전략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기에 1980년부터 2022년까지 조선 종합지수(SCI)가 GDP 디플레이터보다 연평균 1.1% 더 빠르게 상승한 사실은 전통적인 조선 비용 구조가 장기적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음을 보여준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국내 조선 3사는 AI와 로봇 기술을 적극 도입하며 스마트조선소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D현대는 지난 2021년부터 ‘미래형 첨단 조선소(FOS)’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빅데이터, 가상·증강현실(VR·AR), AI, 로보틱스 등 첨단 기술을 조선소 전 공정에 융합해 생산성과 선박 건조 기간을 2030년까지 각각 30%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고부가가치 선박과 함정 분야의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HD현대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가상 조선소 플랫폼 ‘트윈포스’를 운영 중이다. 이 플랫폼을 통해 작업자는 실제 공정을 가상 환경에서 시뮬레이션하며 대기 시간을 줄이고 중복 업무를 제거할 수 있다. HD현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도 착수했다. 정밀 용접 등 고난도 작업의 자동화를 위해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는 2026년 시제품 개발을 마치고, 2027년부터 현장 실증과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한화오션도 드론과 IoT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생산센터 ‘스마트야드’를 경남 거제조선소에 구축해 공정 효율성과 안전성을 높이고 있다. 스마트야드는 공정 중인 선박 블록의 위치와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생산 현장을 원격·실시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생산관리센터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공정 데이터를 시뮬레이션하며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하고, 시운전센터는 해상에서 시험 운항 중인 선박의 상태를 육상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한다. 한화오션은 2030년까지 생산현장 자동화율을 7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이와 함께 미국 필리조선소 등 해외 사업장으로도 스마트야드 확장을 계획 중이다.
삼성중공업은 조선소 전반의 공정을 아우르는 데이터 중심 스마트 플랫폼 ‘SYARD’를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IoT와 AI 기술을 결합해 생산, 설계, 구매 등 주요 공정의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며 공정 단축과 위험 요소 제거, 에너지 효율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여기에 메타버스 기반 원격 품질검사 시스템과 3D 디지털트윈 기술을 접목한 무도면 생산 시스템까지 적용됐다. 현장에서는 레이저 고속 용접 로봇과 자동용접 장비가 일부 공정에 투입돼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AI와 로봇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야드 시스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조선업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인력난과 비용 부담, 친환경 규제가 겹친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야 글로벌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스마트조선소가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을 넘어, 설계와 물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조선업 전반의 체질 개선과 기술 주권 확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조선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명현 부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디지털화된 스마트야드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상용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그동안 유럽이나 일본에 의존했던 기술과 선급 인증 중심의 조선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조선업의 기술 자립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한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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