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제물포’ 옛 추억 담긴 새로운 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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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제물포’ 옛 추억 담긴 새로운 도시로

경기일보 2025-07-21 19:32: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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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일부와 동구를 합쳐 제물포구를 만든다고 준비가 한창이다. ‘천지개벽’이라는 홍보가 설레발일지라도 기껍다. 옛 제물포를 되살릴 수만 있다면 설렐 일이다. 제물포구는 항구를 낀 바닷가 쪽부터 내륙 쪽까지를 아우른다. 예부터 인천에 둥지를 틀고 삶을 영위해 온 사람들 혼이 밴 공간을 묶는다. 공간은 단순히 땅덩어리에 머물지 않는다. 골목골목마다 눈부신 시절이 흩뿌려져 있고 눈물 쏟으며 버텨낸 세월 또한 기막히게 살아 남았다. 부수고 뭉갠 후 정체불명 건물로 채운 곳이 늘었어도 이어진 길 따라 남은 구획은 여전하다. 담벼락에 볼을 비비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이 든 귀향객에게 제물포구는 영험한 고향 땅이다. 나이를 되돌려 친구들을 불러내고 삽시간에 땅 따먹기하던 시절로 데려다 놓는다. 오래됐어도 되살린 추억은 늘 새롭다.

 

도시는 생물 같아서 나고 자라서 소멸하는 길을 걷는다고 한다. 인위가 개입해 수명을 연장하는 게 부질없듯 도시의 생멸을 숙명으로 받아안자는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다만 도시가 성장하고 쇠락하는 속도에 가속도를 붙여 뚝딱 신도시를 지어 올리는 개발이야말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거주자들 편리성을 증진하려는 도시 재생 사업이 제물포에서는 달라야 한다. 신도시를 쫓아 허겁지겁 부동산 부양에 나서는 모양새로는 게도 구럭도 놓친다. 서울에 없는 인천이라야 특색을 살릴 수 있듯 신도시에 없는 제물포를 재발견해내야 한다. 거주자들이 불편한 주거환경을 유지한 채 관광객들 구경거리가 되라는 주문은 아니다. 주거 편의성과 도시 정체성을 고루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달린 문제다. 제물포구 인구 구성과 동향을 분석해 미래형 주택을 고민하다 보면 골목이 살아있는 새로운 도시를 발명해 낼 수 있다.

 

중구에서 동구로 넘어가는 통행로만 있을 뿐 나뉜 행정구역 탓인지 왠지 모를 단절감이 아쉬웠다. 신포동에서 싸리재와 경동을 거쳐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지나 창영학교와 영화학교로 넘어가노라면 근대 교육이 걸어온 길이 보인다. 중구에 있는 개신교와 천주교 교육사를 동구 박문학교 터, 현 교구청까지로 연장하면 중구와 동구를 잇는 의미가 탄생한다. 일찍이 제물포를 채웠던 교육사만으로도 새 도시가 지녀야 할 정체성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 동구에는 이미 ‘노동자의 길’이 나 있고 중구에는 ‘우현 고유섭 길’이 열렸다. 제물포 둘레길을 만들어 ‘동네 한바퀴’를 걷다 보면 종교, 교육, 근대, 문화, 노동, 여성, 의료, 스포츠 등을 주제어로 삼은 이야깃거리들이 끝도 없이 솟아날 것이다.

 

도시가 품은 이야기는 주름이 깊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도깨비 등장에 벌벌 떨면서도 할머니 손을 꼭 부여잡게 만드는 게 옛날얘기다. 다음 장면을 채근하며 올려다보는 쪼글쪼글한 입술 주름은 신비롭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도시는 사연을 간직한 노인의 주름살을 닮았다. 허리 꼿꼿한 빌딩들로 가득한 신도시에는 주름살이 없다. 사방으로 팽팽하게 트여 이야기 따윈 관심도 없다는 표정을 짓는 게 신도시다. 허리가 굽어 느릿느릿 걸어야 보이는 풍경들과 말을 나누게 된다. 느긋한 발걸음과 동행해야 이야기가 생겨나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전승된다.

 

아찔한 빌딩과 빌딩이 아득하게 떨어져 있는 도시에서 주름은 당겨서 없애야 할 노화 현상에 불과하다. 사람들끼리 표정을 읽으며 살아야 할 도시라면 주름살은 희로애락을 담는 그릇이다. 주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배우 문숙에게 늙음은 낭만이라는데 늙어서 새로운 매력을 뿜는 제물포가 ‘낭만도시’면 더 멋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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