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여름 밥상 주인공,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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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최만순의 약이 되는 K-푸드…여름 밥상 주인공, 가지

연합뉴스 2025-07-21 08:55:2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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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가지나물 가지나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보랏빛 채소 가지는 여름 밥상의 주인공으로, 그 존재감은 조용하지만 깊고 묵직하다. 농촌 들녘에서 햇볕을 머금고 익어가는 가지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식탁을 함께해온 고마운 작물이다.

가지의 원산지는 인도 혹은 동남아시아로 알려져 있다. 중국을 거쳐 삼국시대 무렵 한반도에 전해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조상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가지를 재배해왔다. 특히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진상품으로도 올려질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세종실록'과 '산림경제' 등 고문헌에도 가지가 자주 등장하는데, 가지가 우리 식문화 속에서 약용 식재료로도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가지는 동의보감에도 "성질이 서늘하고 독이 없어 속을 다스리며, 열을 내리고 부종을 없앤다"고 여름철 더위와 습기를 다스리는 데 좋은 식재료로 나와 있다. 약선에서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혈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고 민간에서는 피를 맑게 하고 종기나 부기를 가라앉히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일상 식생활에서도 가지는 다양한 방식으로 쓰였다. 뜨거운 밥에 가지나물을 올려 비비면 구수한 맛이 입안을 감돌고, 양념장을 얹어낸 찜 가지는 여름철 입맛을 돋워주는 반찬으로 사랑받았다. 기름에 튀기거나 지져 먹으면 고기 못지않은 감칠맛을 낸다 해 가난했던 시절에는 '서민의 고기'라 불리기도 했다.

가지의 보랏빛 속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세포의 노화를 막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암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옛 어른의 지혜가 현대 영양학으로도 증명된 셈이다.

오늘날도 가지는 여전히 우리의 여름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건강식이다. 단출한 반찬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역사와 민족의 지혜가 담겨 있다.

보랏빛 가지 한 접시, 그것은 우리 조상의 삶과 건강을 지켜준 고마운 약선의 흔적이다.

◇ 어머니의 가지 반찬

어릴 적 여름, 뙤약볕 내리쬐던 텃밭의 가지는 유난히도 선명한 보랏빛을 띠며 자태를 뽐냈다. 그 뜨거운 햇살 아래서도 꿋꿋이 빛나던 그 가지를, 어머니는 풋고추와 함께 바구니에 소복이 담아오셨다.

"오늘은 더위를 이기는 가지요리를 해보자꾸나."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는 광 벽에 매달아둔 마른오징어를 두어 마리 꺼내오셨다. 당시는 오징어가 흔한 간식이었다. 특히 사계절 내내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귀한 식재료로, 그 존재는 무심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커다란 양재기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마당 우물에서 퍼온 찬물과 섞어 미지근하게 만든 물에 마른오징어를 담그셨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면, 오징어는 부풀어 오르고 다시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물렁물렁해진 오징어는 총총 썰어내고, 가지는 반을 나눠 먹기 좋게 손질하셨다. 콩기름과 다진 마늘, 간장, 고추장, 감자녹말, 잘게 썬 풋고추가 부뚜막에 차려졌다. 어머니는 작은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먼저 오징어를 마늘 기름에 볶아낸 뒤, 가지를 간장과 고추장으로 재빨리 볶아 또 다른 그릇에 담아내셨다.

다시 솥에 물을 붓고 볶은 오징어를 넣은 뒤 끓기 시작하면 볶아둔 가지를 넣었다. 부엌 가득 퍼지는 오징어와 가지의 향긋한 내음은, 더위로 지쳐 있던 어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했다.

마지막으로 감자녹말 물을 부어 걸쭉하게 만들고 참기름과 송송 썬 파를 올리면, 커다란 접시 위에 완성된 여름철 보양 반찬이 만들어졌다.

어머니는 곁들여 말씀하셨다.

"아들아, 이런 날씨엔 만사가 귀찮고 몸이 나른해진다. 식욕도 없고, 기운이 없어지는 법이란다. 이럴 땐 자극적인 음식보다 맑고 담백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비위가 상하지 않고, 마음도 덜 지친다."

그 시절에는 몰랐다. 그러나 이제 와 돌아보면 어머니의 손맛 속에는 자연을 이해하는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철학이 숨어 있었다. 가지는 여름철 허열을 식히고 노화를 늦추며 면역력을 높이는 채소다. 오징어는 사계절 단백질을 보충하는 귀한 식재료였다. 이 둘이 만나 만든 음식 한 접시는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한 그릇의 보약이었다.

◇ 손자병법으로 본 가지 요리법

가지로 자주 만들어 먹는 음식을 손자병법 '구지'(九地)의 전략에 응용해 봤다.

손자는 "전쟁터에는 아홉 가지 땅의 지형이 있으니, 각각의 지형에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네 삶 또한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면, 부엌에서 익어가는 가지 한 접시도 나만의 병법이 될 수 있다.

가지는 여름철 식탁의 현명한 장수다. 볶고, 굽고, 무치고, 말리며, 때론 바싹하게 튀겨내는 그 속에는 삶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손자병법의 9가지 지형 중에서 '산지'는 말린 가지나물이다. 고향 가까운 평온한 땅, 쉽게 흩어질 수 있는 산지는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기본을 놓치지 말아야 할 지형이다. 말린 가지를 물에 불려 들기름에 볶아낸 나물은 산지의 음식이다. 투박하고 수수하지만, 소화에 부담 없고, 마음마저 안정시킨다. 기세보다는 균형과 절제가 우선이다.

가지무침 가지무침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다면 '경지'는 가지무침이다. 살짝 적진에 발을 들인 불안정한 지형. 가지무침은 삶은 가지를 찢어 고춧가루, 마늘,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 쉽고 가볍지만, 자극이 지나치면 흐트러진다. 경지의 병사는 전리품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듯, 무침도 지나친 욕심 없는 담백함이 생명이다.

'쟁지'는 가지튀김이다. 가장 인기 있는 지형, 모두가 차지하려는 곳이 쟁지다. 가지튀김이 바로 그 요리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누구나 먼저 집어 들고 싶다. 하지만 기름 온도를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눅눅해진다. 전쟁이든 요리든, 타이밍이 생명이다.

가지튀김 가지튀김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지'는 가지 초무침이다. 서로 오갈 수 있는 개방된 땅, 외교가 필요한 지형. 초장에 버무린 가지무침은 새콤달콤한 조화로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다. 이 요리는 입맛 없는 여름철, 대중성과 접근성을 가진 친화적인 음식이다.

'중지'는 가지조림이다. 적진 깊숙한 중대한 땅. 여기는 한 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진지한 싸움터다. 간장과 조청에 조려낸 가지조림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요리로 양념은 깊고, 맛은 무겁다. 삶에서 마주치는 중대한 선택 앞에서는 이처럼 집중과 끈기가 필요하다.

'비지'는 가지전이다. 험난하고 미끄러운 땅, 조심스럽지 않으면 쉽게 무너진다. 밀가루옷 입혀 부친 가지전은 겉은 부드러우나, 뒤집기 한 번 잘못하면 망가진다. 삶의 균형 감각을 시험하는 음식이다. 불 조절과 타이밍의 예술이다.

'사지'는 가지찜이다. 도망도 퇴로도 없는 사지. 그곳은 죽을 각오로 싸워야 살아남는 곳이다. 두껍게 자른 가지를 쪄낸 뒤, 강한 양념에 무친 가지찜은 강한 열기와 압력에도 꿋꿋이 살아남아야 제맛이 난다. 이 요리는, 인생이 벼랑 끝에 몰릴 때, 뚫고 나가는 용기를 닮았다.

'위지'는 가지볶음이다. 포위된 땅, 진퇴양난. 이때는 빠르게 돌파할 묘수가 필요하다. 가지를 얇게 썰어 센 불에 볶는 요리는 느리면 물컹해지고, 빠르면 타버린다. 가지볶음은 긴장을 놓치지 않는 음식, 위기를 빠져나오는 민첩함을 상징한다.

사지는 구지의 지형 중 마지막에 다시 한번 나온다. 두 번째 나오는 사지에 맞는 요리는 가지구이다. 삶과 죽음이 맞닿은 진정한 사지. 다시 돌아온 이 지형은, 궁극의 선택 앞에 선 자리다. 숯불이나 팬 위에서 구운 가지구이는 속살을 모두 드러내야 맛이 살아난다. 겉은 쪼그라들고 색은 변하지만, 그 안엔 깊은 향과 고소함이 응축돼 있다. 인생에서 버리고 비워야 비로소 진짜 향이 우러나는 것을 닮았다.

손자는 여기서 또 한 번 강조했다.

"지형을 알면 승리를 얻고, 모르고 나가면 패배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가지 하나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날의 밥상이 되고, 나아가 그날의 보양식이 된다.

필자의 주방은 언제나 작은 전쟁터다. 오늘은 어떤 지형이며 어떤 가지요리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러니 가지야말로 여름 밥상 주인공일 터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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