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 등반·자전거 제주도 일주로 도전 정신 함양
"교육 혁신은 교사에게 자율성 주고 제대로 지원할 때 성공"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지난 14일 오후 1시 30분 애월초등학교.
처음 들어간 교실에서는 14명의 학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공룡을 그린 남학생의 그림에는 재미있는 설명이 붙어있다.
'행성: 울트라 지구, 집: 대형 수중동굴, 종류: 외계공룡, 이름: 스사모피나사우륵, 기술: 울트라 빔, 성격: 순수함, 먹이: 말미잘과 물고기, 좋아하는 것: 광선검 장난감, 싫어하는 것: 엄마의 잔소리, 특징: 백수, 하고 싶은 것: 집에서도 뒹굴(게으르다), 차: 없다'
제일 어려 보이는 여학생이 그린 그림 속 주인공은 전기기타 연주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름: 밴동이, 특징: 눈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성별: 여, 취미: 전기기타를 치는 걸 정말 좋아한다, 거주지: 밴드별, 나이 7살, 성적: 수학은 못 함 다른 건 다 100점, 별명: 새싹이, 좋아하는 것: 외계인 안경과 구름일렉기타, 좋아하는 음식: 새싹과 네 잎 클로버 샐러드'
다음에 들른 재봉 동아리방. 남학생 1명과 여학생 9명이 부지런히 바느질하고 재봉틀을 돌리며 천으로 필통을 만들었다.
다목적실에서는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댄스를 배웠고, 과학실에서는 코리아보드게임즈 챔피언십이 한창이었다.
체육관으로 간 40여명의 학생이 코트를 절반으로 나눠 한쪽에서는 배구를, 다른 쪽에서는 축구를 했다.
모든 활동 지도는 외부 전문 강사가 주로 맡고, 담임이 함께했다.
이들 활동은 3∼6학년 학생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무학년제 동아리 활동이다.
제주형 자율학교 중 '다혼디배움학교'인 애월초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을 중시해 이 같은 무학년제 동아리 활동을 연간 34차시 운영한다.
애월초는 '다 함께 배우는 학교'라는 자율학교의 취지에 맞게 무학년제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2학년은 난타북을 하고, 3∼6학년은 난타북을 비롯해 합창, 작곡, 뮤지컬, 풍물을 한다.
애월초는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학생 맞춤형 정규 교육과정을 설계해 기존 교과목을 융합한 학년별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한다.
예를 들면 국어·도덕·사회·체육·미술·음악을 융합한 '평화로운 공동체 기반 다지기' 수업 3학년 39차시를, '안전과 평화를 위한 실천하기' 수업 4학년 41차시를 각각 운영한다.
국어·도덕·미술 융합 '4·3의 아픔 이해하고 공감하기' 5학년 29차시와 국어·사회 융합 '민주주의 발전 과정을 배우고 배움여행 기획하기' 6학년 61차시 등이 있다.
발달 단계에 맞춘 체계적 도전활동도 있다.
1학년은 줄넘기 연습을 하고, 2학년은 애월읍 주변 오름을 등반하며, 3학년은 롱보드 스케이트를 연습하며 체력을 키운다.
4학년은 한라산 정상을 오르고, 5학년은 자전거를 타고 3박 4일간 제주도 일주를 한다. 6학년은 나눔 마라톤에 참여하는 등 교내외 봉사활동을 한다.
애월초는 특히 전교생 168명이 학년별로 골고루 섞인 20가족을 구성해 가족별 활동을 1년간 진행한다.
3∼4월 가족별 사진 촬영 및 가훈 정하기, 4월 학교 문제 해결 및 행사 준비, 5월 가족별 미션 활동, 6∼7월 학년별 다모임 봉사회 선거, 7월 전 학년 물놀이, 12월 가족별 나눔장터 운영 및 기부 순이다.
이 같은 가족 활동을 통해 학년을 넘어선 공동체성을 형성하고, 관계 강화를 통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학교 문화를 조성하고 있다.
애월초는 전국에서 혁신학교 운동이 한창일 때인 2015년 제주형 혁신학교로 출발했다.
교사들은 그때부터 수많은 회의와 토론을 통해 교육과정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두근거리는 배움을 함께하는 따뜻한 학교'라는 교육 비전을 세웠다.
존중·참여의 민주적 학교 운영, 배려·협력의 창의적 교육과정 실천, 나눔·성장의 전문적 학습공동체 구축, 소통·행복의 윤리적 생활공동체 구축 등 4가지 운영과제도 설정했다.
학부모와의 소통 채널도 다양화했다. 학부모 참여형 교육과정 설명회와 학급별 학부모 다모임, 학부모대의원회를 통해 수렴한 의견을 학교 교육에 반영한다. 학부모 상담주간도 운영한다.
10년이 흐르는 동안 관행적인 상명하달식 학교 운영은 배제되고, 모든 교직원이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하는 새로운 체계가 성공적으로 정착됐다.
김찬경 배움지원부장은 "애월초가 도드라진 것 중 하나는 도전 활동"이라며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물어보면 한라산 정상 등반이었다는 대답이 제일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4학년 학생들이 한라산을 등반하고 돌아오면 학교에서 전교생이 기다렸다가 축하해주고 응원해주는 문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 공동체 의식이 한 단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사들도 매월 1∼2회씩 전문가를 불러 공부하고 토론하며 성장한다"며 "교육과정의 혁신은 선생님들께 권한을 주고 교육 당국이 제대로 지원할 때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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