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형사사법 시스템이 멈췄다.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특검 조사와 재판 출석을 전면 거부하면서, 대한민국 법체계는 ‘사법 불응’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과 마주했다. ‘전직 대통령 예우’라는 불명확한 기준은 구속 상태조차 실질적 치외법권으로 만들고 있다. 지금 법 앞에 선 것은 피의자가 아닌, 사법제도 그 자체다.
◇‘구속’의 실효가 사라진 사법의 공백
내란 등 중대범죄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형사사법 절차 전반에 사실상 전면 불응하고 있다. 건강상 사유를 들어 재판 출석을 거부한 데 이어, 특별검사팀의 소환 요구(7월 11일·14일)에도 두 차례 연속 응하지 않았다. 법적 절차가 피의자의 선택에 따라 정지된 초유의 상황이다.
서울구치소는 특검이 발부한 인치 지휘(강제 출정 요청)를 접수하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교정당국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과 내부 지침을 근거로 물리력 행사를 유보했다. 그 결과, 구속 상태임에도 출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법적 공백이 발생했다.
수사를 위한 구속이 절차의 정지를 초래하는 아이러니가 현실이 됐다. 한 법조인은 “수사권은 사법 시스템의 시작점인데, 그 권한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못한다면 이는 곧 제도의 정지와 다름없다”고 진단했다.
◇강제력 상실한 법집행, 피의자 선택에 흔들리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구속의 정당성을 재확인했다. 법적으로 강제 구인이 가능한 상태임에도 현실에서는 어떠한 절차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특검은 대면 조사 한 차례 없이, 출석 일정 협의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핵심은 ‘구속’과 ‘조사’가 분리돼 사법 절차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형사사법 체계상 유례없는 기능 상실이다. 더욱이 윤 전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진술은 일절 거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고, 향후 재판 출석 여부도 불투명하다.
한 형사법 전문가는 “진술거부권은 헌법상 권리지만, 출석까지 전면 거부하는 방식은 방어권의 남용”이라며 “이런 선례가 굳어진다면 형사 절차는 피의자의 자의적 선택에 따라 무력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진술 없는 기소, 제도 정당성 시험대에 오르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윤 전 대통령의 진술 없이 기소를 강행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박지영 특검보는 “진술 불응 상황에서 확보된 정황과 증거를 토대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진술 없이도 기소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피의자의 침묵은 공소 유지에 중대한 부담을 남긴다. 모든 입증 책임이 수사기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판에서도 불출석과 진술 거부가 반복될 경우,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물리적 충돌과 법적 공방이 지속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법조계 인사는 “형사소송은 국가권력과 피의자 간 권리 균형 위에 서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이 피의자의 일방적 거부에 의해 무너진다면, 법체계 자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우법’이 멈춘 법치…정무가 사법을 압도할 때
이번 사안의 핵심 구조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 형사사법 절차에 실질적 차단 기능을 하며,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구치소는 ‘예우법’과 내부 규정을 이유로 인치 집행을 유보했지만, 해당 법은 연금·경호 등 생활 보장 조항에 한정되며, 형사소송법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정당국은 사실상 정무적 판단을 이유로 집행을 중단했고, 이로 인해 특검의 인치 지휘는 ‘행정적 집행 불능’ 상태에 빠졌다. 형사사법 절차가 특정 권력자에게만 예외적으로 유예되는 구조가 실현된 셈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사법적 책임 회피의 근거가 된다면, 향후 모든 고위공직자가 동일한 방식으로 절차를 무력화할 수 있는 위험한 전례가 된다”고 경고했다.
◇사법 거부 앞에 선 국가, 법치주의는 증명될 수 있나
윤 전 대통령이 조사 없이 기소되고, 재판에도 불출석하는 상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형사사법사에 기록될 중대한 사례로 남게 된다. 특검은 증거와 정황을 더 촘촘히 구성해야 하며, 공판 절차 역시 불출석과 진술 거부를 전제로 한 대응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순한 법적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형사사법 시스템이 ‘권력자에 의한 거부’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실질적으로 작동 가능한지, 그 제도 설계와 운용 방식 전반을 묻는 구조적 시험이다.
법의 평등은 제도의 마지막 보루다. 그 원칙이 예외에 무너질 때, 법치국가는 붕괴한다. 사법제도가 권력자의 불응 앞에서 멈춘다면, 그 책임은 단지 한 명의 피의자가 아닌, 그 제도를 집행하고 유지해야 할 국가 전체에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법의 권위’와 ‘예외의 정당화’ 사이 갈림길에 서 있다. 이 재판의 귀결은 단순한 판결문이 아닌,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법치주의의 기준선을 결정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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