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몸무게가 10g도 안 되는 야생 동물이 있다. 머리부터 몸통까지 길이는 5cm 남짓이고, 꼬리를 쫙 펴도 10cm를 넘지 않는다. 너무 작아서 억새밭 위에 지은 집이 새의 둥지로 오해받기도 한다. 사람 손바닥에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알고 보면 엄연한 포유류다. 여름철 풀숲을 떠도는 멧밭쥐 이야기다.
꼬리로 줄기 잡고 기어오르는 풀밭의 작은 건축가
멧밭쥐는 설치목 쥣과에 속한 소형 포유류로, 우수리 멧밭쥐라고도 불린다. 한반도와 일본, 타이완, 중국, 시베리아, 인도차이나 북부와 유럽 전역에 서식한다. 몸길이는 5~6cm, 꼬리는 5~9cm로, 제일 작은 경우 7.7g밖에 되지 않는다. 동전보다 가벼운 셈이다.
털빛은 등 쪽은 회갈색, 허리는 오렌지빛이 도는 노란색이며, 배는 하얗다. 긴 꼬리를 식물 줄기에 감아 몸을 지탱하면서 기어오른다. 주로 저지대 초지나 갈풀 군락에서 생활하며, 고산 지역까지 서식 범위를 넓힌 개체도 있다.
둥지는 높이 60~100cm 정도의 풀줄기 잎집에 짓는다. 구조는 둥근 새집 형태로, 억새나 갈풀 줄기, 이끼류를 얽어서 만든다. 이 둥지 덕에 새가 아닌 쥐가 만든 집이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 생김새는 귀엽고, 성격도 온순해 사람이 손에 들고 먹이를 주면 빠르게 길들여질 정도다. 주로 곡식을 먹지만, 곤충을 잡아먹는 습성도 있다.
여름에만 번식하고 겨울엔 땅속 생활
멧밭쥐는 여름인 7~8월 한 차례 번식기를 가진다. 한 배에 4~6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둥지에서 새끼를 키우다 날씨가 추워지면 땅을 파고 들어가 겨울을 난다. 기온이 낮아질수록 먹이를 찾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가을이 끝나기 전에 몸에 지방을 축적하거나 따뜻한 은신처를 마련해 둔다.
작은 몸 크기 탓에 다양한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히기 쉽다. 먹이사슬에서 하위에 속하기 때문에 민첩하게 움직이고 풀숲 안에 숨어 지내는 시간이 길다. 움직임은 빠르지만, 활동 반경은 크지 않다. 사람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끔 관찰되는 멧밭쥐의 집은 풀줄기 위에 매달려 있거나 잎사귀 사이에 매끈하게 숨겨져 있다.
멧밭쥐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생물이기도 하다. 농업 확장, 초지 개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서식지를 잃기 쉽다. 인간의 접근이 잦아지는 여름철이면 둥지 근처에서의 방해가 생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테니스공 속에 사는 영국의 멧밭쥐
영국에서도 멧밭쥐를 볼 수 있다. 현지에서는 멧밭쥐를 ‘수확쥐(Micromys minutus)’라 부른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영국에서는 농업과 홍수로 인해 서식지가 급감하여 보호가 시급한 야생동물이다. 영국의 대표 테니스 대회 ‘윔블던’을 주관하는 AELTC는 매년 사용된 테니스공 5만 5000개를 야생동물 보호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이 테니스공들이 멧밭쥐를 위한 인공 둥지로 활용된다.
보호단체는 테니스공에 작은 구멍을 뚫어 출입구를 만들고, 이를 풀밭이나 울타리에 고정해 멧밭쥐가 거주할 수 있게 만든다. 공의 내부는 보온성과 방수력이 뛰어나며, 크기와 구조도 멧밭쥐에 딱 맞는다. 자연의 보금자리를 잃은 작은 생명체를 위한 창의적인 해법인 셈이다.
수많은 볼 보이와 선수의 손을 거쳐 간 테니스공이 풀숲 속 작은 생명을 위한 둥지로 다시 태어난다. 경기장에서 쓰고 남은 공 한 개가 쥐 한 마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집이 된다는 점에서, 이색적이지만 따뜻한 시도다. 멧밭쥐처럼 작은 동물도 그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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