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햇살을 막아주는 참나무 그늘, 습기 머금은 이끼 사이로 뭔가 단단한 것이 튀어나와 있다. 삽으로 조심스레 파내면 곧 진한 향이 올라온다. 뿌리를 자르면 하얗고 끈적한 즙이 뚝뚝 떨어진다.
이 뿌리는 ‘고본’이다. 여름 산나물 중에서도 채취가 까다롭고 귀한 식물이다. 뿌리 100g에 2만 원까지 거래된 적도 있다.
깊은 산속 그늘에서만 자라는 '고본'
고본은 산형과에 속한 다년생 초본이다. 키는 1m 안팎까지 자라고, 줄기는 곧게 서 있으며 붉은 기운을 띤다. 주로 7월부터 9월까지 꽃을 피우는데, 하얗고 자잘한 꽃이 산형으로 모여 핀다. 뿌리는 두껍고 연한 갈색이며 껍질을 벗기면 흰 즙이 나온다.
주로 깊은 산 그늘진 곳에서 자란다. 햇빛이 직접 닿지 않는 습한 산지, 계곡 주변이나 이끼 많은 바위틈에서 자생한다. 인공 재배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뿌리를 캐면 생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자라기도 어렵다.
채취 시기는 7월 중순에서 8월 초까지가 가장 적기다. 줄기가 성숙하면서도 뿌리에 영양분이 집중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고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등산객이 자주 드나드는 길에는 거의 없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야 간혹 발견된다.
민간에선 ‘두통 잡는 뿌리’로 알려졌다
고본의 뿌리는 약초로 사용된다. 리그난(lignan), 쿠마린(coumarin), 플라보노이드(flavornoid) 계열의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어 항염과 항균에 관여하며, 혈관 이완 작용으로 두통 완화에 쓰였다.
특히 편두통, 감기, 코막힘 증상 완화를 위해 탕제 형태로 끓여 마시거나, 뿌리를 말려 두고 차처럼 우려 마시기도 했다. 실제로 약용으로 유통되는 고본은 대부분 뿌리 부위를 채취한 후 깨끗이 손질해 햇빛에 말려 건재로 만든 것이다.
다만 생고본은 섭취 시 주의가 필요하다. 약효 성분이 진하기 때문에 빈속에 먹으면 속쓰림을 유발할 수 있다. 어린이와 임산부, 위장 질환자는 전문가 상담 후 섭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튀기거나 무쳐 먹는 ‘여름 밑반찬’
고본은 주로 약재로 쓰이지만 일부 지역에선 반찬으로도 활용한다. 강원도 일부 산간에서는 어린 고본 잎이나 줄기를 데쳐 초무침으로 만든다. 쌉싸름한 맛과 향이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 뿌리는 잘게 썰어 기름에 튀겨먹거나 부침 재료로 활용하기도 한다.
고본 뿌리를 튀기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향은 산야초 특유의 향긋함이 남아 있어 자극적이지 않다. 일부 약선 음식 전문점에서는 고본 뿌리를 들깨죽, 약밥 등에 넣어내기도 한다. 다만 일상 식사보다는 특별식이나 여름 보양용으로 먹는 경우가 많다.
고본은 일반 시장에서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다. 산 약초 판매장을 통해 건고본 형태로 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온라인 판매처를 통해 농가 채취 상품이 한정 판매되기도 한다. 200g 한 팩에 3만~4만 원 사이 가격으로 거래된다.
채취는 자제해야 하는 식물
고본은 현재 멸종위기 식물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자생지가 줄어들고 있다. 깊은 산지에서도 자주 보이던 시기가 있었지만, 약용 목적으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개체 수가 줄어들었다. 국립수목원 자료에 따르면 고본은 한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채취할 때 3년 내 자생력을 잃는다.
특히 뿌리를 파내는 순간 식물 전체가 손상되기 때문에 채취는 최소화해야 한다. 자연 상태에서 보존되는 고본은 생태계 내에서 해충 퇴치, 토양 보습에도 역할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림청과 자원 보존 단체가 고본 자생지 보호에 나서고 있다.
야생 고본을 발견하더라도 함부로 채취하기보다는 관찰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요한 경우, 인증된 약초 재배지나 채취 허가를 받은 농가를 통해 구매하는 방식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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